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무 Sep 05. 2022

이미 결심

무조건 옛날 것들이 나쁜 건 아니다만, 언어나 단어는 매일같이 달라진다. 나빠서 달라지는 것은 정말 정말 아니다만, 구전되거나 기록되면서 유동적으로 변한다. 우리네 삶의 변화를 따르는 것일 텐데,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구시대적 발상에서 비롯된 단어이거나, 현대인의 맥락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언어는 현대화되면서 경제성이 중요해졌단다. 현대화란 곧 자본주의의 강화였고, 보다 많은 재력을 축적하는 것이 힘이 되었기에 '빠른 시간에 많은 돈을 버는 효율과 경제성'이 중요했다. 인식의 중요성이 극강의 효율을 따지니, 행동도 극강의 효율을 따지고 자연스레 말도 축약되어 왔다.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의견도, 길게 말해도 되는 것인데. 현대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최대한 간략하게, 용건만, 줄일 수 있는 건 다 줄여서. 별걸 다 줄인다.를 '별다줄'이라 줄여 말하는 현대인을 보면 말 다 했다. 물론, 줄임말이 재미를 가져올 때도 있고 언어의 발전과정 측면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정말 급할 때는 장황하게 설명하기 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합당하니까. 안타까운 점은 천천히 곱씹으며 말하는 것이 독특해졌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단어를 꼭꼭 씹어먹지 못한다. 단어의 의미와 뜻에 대해 너무하게 관심이 없다.



최근, 버티고개역을 지나면서 궁금해졌다. 버티고개는 왜 버티고개일까. 고개는 알겠고, 버티는 뭐지? 싶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과거 버티고개는 도둑놈이 많았던 고개였단다. 그래서 순찰을 도는 사람들이 '번도~'라고 외치고 다녔단다. 번도가 구전되며 버티가 되었단다. 유래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문헌에서 증거와 진위를 파악하지만 어디까지나, 전해진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을 테다. 그러나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또 녹사평을 찾아보니, 과거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푸른 평야였단다. 더 자세한 유래를 직접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약수는? 우리가 아는 그 약수가 맞았다. 버티고개 근처에 실제로 몸에 좋은 물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많이들 마셨나 보다. 지명이 약수가 될 정도면 얼마나 좋은 물이었을까. 지명의 유래를 모를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이제는 6호선을 타면 유래들이 생각난다. 다른 곳도 찾아보고 싶어지고, 곱씹으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너무나 문과적 상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과적 마인드를 가진 이는 절대 공감 못할 테다. 그런데, 문제를 풀고 답을 찾으면 그 문제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처럼 단어도 뜻을 알면 더 잘 알게 된다. 뭐든 의미를 알게 되면 달라지는 것이다. 유래도 그렇고, 의미도 그랬다. 사람도 상황도 사건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내면과 의미를 알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알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이해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는 것은 재미였으나, 재미에서도 배운 셈이다. 사람도, 상황도 사건도 자세히 들여다보아 이해하며 마음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야겠다. 유래를 찾아본 것은 아주 짧은 검색의 시간이었으나, 그 후로 수 십 번 곱씹었다. 비로소 나의 것이 되었다. 



단어의 유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래서 곱씹기도 쉽고, 이렇게 기록하기도 쉽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과 상황의 맥락과 사건의 진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한 검색의 시간보다 더 오래 공들이고, 다듬어야 한다. 되새기고, 오래토록이고 노력하여 느껴야 한다. 근근이 찾아오는 후회의 시간이 있는데, 자주 찾아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성이다. 내가 조금만 더 알았다면, 내가 아주 조금만 더 섬세했다면 싶은 것이다. 정말 별것 아니다만, 왼손잡이인 상대와 밥을 먹는데 물컵을 오른손 쪽에 주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상대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너무나 습관적으로 오른쪽에 물컵을 주었다. 상대는 그런 경험이 잦았기에,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나는 내심 미안했다. 내가 조금만 더 상대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상황도 그렇다. 아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 있는데, 괜찮겠지 싶어 대략 짐작했으나 맥락을 못 짚어 바보가 된 경험도 있다. 사건은 어떨까, 어느 사건에는 사실과 진실이 있는 법인데 진실까지 도달하지 못한 경험이 너무나 많다. 사실만 언급하고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아쉬운 순간들이다.



단어가 경제성을 가지고 줄임말이 많아졌듯이, 사람 관계에도 경제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옛말로는 '인간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라고 표현하는 것이고, 현대인의 맥락으로 바꿔보면 '사람 간의 가치교환'이 너무나 중요해졌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관계 속에 담아두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감정을 교류하고 언어와 비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게 만들어졌을 테다. 그러나 오늘날은 팔로우 유무가 연결이고, 디엠이 교류며 텍스트만이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었다. 단어는 경제적으로 줄여 말해도 되는데, 사람 관계를 정말 이렇게나 줄여도 되나 싶을 때가 정말 잦다. 이건 진짜 세상 모든 인스타그래머들이 머리를 맞대고 반성해야 한다. 물론 내게도 적용된다. 너무나 자연스레 가치 평가가 이뤄지고, 득과 실을 따지려 하지 않아도 이미 계산이 끝나있다. 나도 경제성에 물든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목사님이 계신다. 말씀이 좋은 것도 맞는데, 사람이 정말 좋으시다. 내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시고 있고, 다시금 신앙의 기초를 쌓는 데 도움을 주시고 있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상대를 만날 때, 이미 결심하고 만나라"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만난 후 상대의 가치를 평가하고 상대하는 태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심'하고 상대하라는 것이다. 상대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만나면, 상대가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밉지가 않다는 것이다. 목사님의 두 딸을 예로 들며 말씀하신 것이었다. 딸들이 태어나기 전에,  딸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어서 퇴근 후 너무나 피곤해도 딸들과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주신다는 것이다. 가족이니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으나, 이 말씀을 듣고 친구에게 해보았는데! 정말이지 너무나 효과가 좋았다. 원래 자주 다투던 친구가 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둘 다 자기주장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가 하고 싶다는 대로, 친구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주기로 '이미 결심'을 했다. 그러자 친구의 의견과 주장이 밉지가 않다. 옛날에는 무조건 반박하고 다투었을 텐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미 결심'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이옥섭님이 이효리님의 서울체크인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너무 미운 사람을 발견하면 마음속으로 사랑해버린다고, 그럼 더 이상 밉지가 않다고. 자기 영화 등장인물로 생각하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도 '이미 결심'한 거다. 미운 사람을 '사랑'해버리기로. 목사님은 신앙과 연결하여 크리스천의 자세를 설교하신 것이지만, 이옥섭은 비 신앙인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을 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손해를 보자는 것이다. 관계에서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때로는 '이미 결심' 해버리는 것이다. 아, 관계에서 손해를 좀 보자. 상대가 원하는 것도 주고 오래 말해도 들어줘보자. 그게 우리네가 만들어진 본래의 모습을 조금은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말은 줄여 말해도, 관계는 줄이지 말자. 손해 보더라도, 오래 깊게 넓게 관계를 가져가자. '이미 결심'하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전 10화 나의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