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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Mar 20. 2022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여금 우리는 살아간다.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열심히 산다. 그게 가끔 내게 부담이 될 때가 있다. 내가 덜 열심히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 가진 '열심의 기준'이 다르기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그럴까. 다들 열심히 사네, 하며 마음이 울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들과 도란도란 앉아 맥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말을 건넸다. 그동안 조금 무기력했던 것 같다고, 그래서 코로나에 걸려 쉬면서, 많이 돌아봤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친구들의 반응은 이랬다. '너는 충분히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더 열심히 사는 너는 좀 무서운데?' 웃으며 건넨 말에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열심히 산다고 느낀 것일까. 내가 놓친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며 정리되는 생각으로, 무기력을 열심으로 이겨낼  없는  같다. 무기력의 반대는 기력 일테고, 기력을 내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앞뒤가  맞게 느껴진다. 기력은 열심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고 싶어진 마음이 기력이 차오른 증거이기에, 무기력할  열심히 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달려가는 어린아이 같네. 무기력할  정말로 해야 하는 것은 기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는 일인  같다.  또한 사람마다 다를  같다. 나에게 기력이 차오르는 느낌을 주는 순간은 글을 쓰는 시간, 좋은 영화를 보는 시간, 좋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 건강한 음식을 먹는 시간인  같다. 나의 기력이 차오르기 위해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너무나 중요한  같다.


토요일 저녁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술을 한잔 하자는 전화였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텐데, 전화 준 형이 보고 싶어서 나갔다. 친한 형과 친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구를 통해 형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나갔다. 셋이 허름한 삼치집에 자리를 잡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 업데이트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조금씩 빈 병이 쌓이고, 형이 말이 많아졌다. 삶에 대한 이야기와 푸념들. 이야기를 들으며 앞서 적어둔 이야기가 생각났다. 형이 무기력한 상태이고, 기력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형은 형만의 방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을 다물기 너무나 잘했다. 형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시간이 흘러 일어나야 했다. 형의 인생이 완벽하게 행복해지진 않았겠지만, 삼치를 먹으며 술잔을 기울인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잘 먹었다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형의 말에 감사했다.


형이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을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기력을 채우는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이건 형이 정확하게 안다. 아니라고 한다면 다른 것을 찾아내겠지. 사람마다 방식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기력이라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도. 이런 것을 떠올리는 생각이라는 것도. 가만히 살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뿐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우선화되고 중심화된 사회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도 힘을 가지게 된다. 우선된 가치가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여금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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