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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Nov 26. 2021

유튜브를 매일 보시나요?

보았고, 느낀다면 살아야죠.

유튜브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아는 유튜버보다 모르는 유튜버가 많다. 어느 영역에서나 그렇듯이, 많을수록 진짜를 찾기가 가장 어렵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는 옛 말이 이런 비유는 아니지만, 넓을수록 진짜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영상들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정의 내릴 순 없다만, 유튜브를 볼 때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유튜버를 찾으면 구독을 누른다. 그런데 쉽사리 알람 설정을 누르게 되진 않았다. 유튜버의 영상이 재밌고 좋지만, 알람까지 맞춰서 보고 싶진 않은 것이다. 구독자가 많건 적건 상관이 없다. 그런데 딱 두 명. 구독과 함께 알람까지 맞추었다. 본능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한 분은 런업님이고 다른 분은 유현준 건축가님이다. 알람 설정을 하면서까지 그들의 영상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배울 점이 있기 때문. 범람하는 영상들 사이에서 진짜를 가르는 기준은 배움에 있다.


초기 유튜버 문화는 지금처럼 체계화되거나, 기획하여 찍는 문화가 아니었다. 혼자 기타를 치다가 영상을 찍고, 업로드하고. 유튜브를 보다가 마음에 들면 구독을 누르는 것이 초기 문화였다. 각 잡고 기타 커버 영상을 찍는 것은 나중에 발전한 형태이다. 초기 문화를 생각해보면 취미를 공유하는 유희 활동에 가까웠고, 아카이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구글이 인수를 했고, 구글 애드센스를 통해 수익을 셰어 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직업으로의 유튜버가 생겨났다. 지금도 유희적 요소는 남아있지만, 취미 공유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단순한 기타 플레이 영상이 아닌, 기타를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접근이 달라진 것이다. 이는 유튜버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의미하지만, 소비하는 이들의 성격도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과거 모두가 취미를 공유할 때는 소비자도 취미 공유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유튜브 소비자는 상호 간 공유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원하고 있다. (광고나 프리미엄으로 비용을 충당하기에) 일방적으로 원한다는 것은 바라는 것이 있는 상태이다. 나는 그것을 인간의 배움 욕구로 해석한다.


런업님이 11월 25일에 업로드한 <의심하지 마 너만의 이유를 만들어 보자>에서 내가 배운 점은 이거다. “멋이라는 것은 자신감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가? 이유 있는 행위에서 온다.” 런업님은 허리에 차는 작은 가방을 메고 있는데, 촬영용 렌즈를 넣고 빠르게 교체하기 위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정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남들이 이상하다고 말하건, 웃기다고 말하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렌즈 넣는 가방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가 있고, 그게 자신감의 근원이며 런업님 만의 멋이 되는 것이다. 런업님은 영상을 마치며 구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이유 있는 아이템은 무엇이냐고. 오늘 아침 옷을 입으며 이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입은 코트가 내게는 이유 있는 아이템이었다. 아버지께서 오래전 입었었고, 존재를 잊고 있던 코트. 옷장 속에서 꺼내어 내가 입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너무나 예뻤다. 남들이 모두 유행하는 발마칸 코트를 입을 때, 난 아버지의 빌트모어 코트를 입는다. 이게 나의 이유가 되었고, 이유 있는 자신감이 생기니 멋짐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코트를 입은 나는 꽤나 멋지다.


유현준 건축가님도 당연히 언급해야 한다. 유현준 건축가님은 방송 활동으로 대단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깊이가 그렇게나 깊은지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다. 건축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지! 유현준 님은 유튜브를 시작 하신지 얼마 안 되어 영상도 몇 개 안된다. 그런데 영상 하나하나가 정말 엄청나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좋은 교양수업을 듣는 것 같다. 지식을 쌓는 이유는 세상을 더 잘살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내가 사는 집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구조는 언제부터 이랬는지 등등. 비소로 이해할 때 ‘잘’ 살게 된다. 잘 산다 것은 언제나 애매하지만, 더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잘살게 된다고 믿는다. 


건축가님이 캠퍼스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 인상 깊었다. 홍익대 건축과 친구들이 건축을 잘한다며 그에 대한 근거로 홍익대의 건물 구조 그리고 홍대 앞 바로 붙어있는 도시에 대해 말씀하셨다. 건축은 결국 도시를 만드는 것이기에,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홍대입구를 매일 접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환경에 있는가가 사람의 성향을 만들고, 생각의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내가 매일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자주 접하는 자연은 어디에 있는지, 느끼고 향유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서울숲 근처에 사무실이 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을 내어 서울숲을 걷는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서울숲을 소유하게 된다. 넓은 공원에 작은 의자라고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만의 공간이 된다. 서울숲을 느끼고, 향유하는 삶과 아닌 삶은 차이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서울숲으로 향한다. 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고, 더 잘살고 싶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웃고, 남는 시간을 채우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을 그곳에서 배운 것을 실제 삶에서 적용해야 한다. 영어 회화 유튜버를 매일 본다면, 실제로 삶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키워야 한다. 여행 유튜버를 매일 본다면, 언젠가 떠날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런업님께 이유 있는 자신감을 배운 것처럼, 유현준 건축가님께 공간의 의미를 배운 것처럼 배웠다면 삶으로 살아내야 내 것이 된다. 내가 살아내지 않으면 그 지혜와 생각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다. 다양한 영상이 범람할 때 진짜를 찾고,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보다 나아진다고 믿는다. 우리 진짜 삶은 유튜브 밖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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