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용어 없이 말하기
브런치에 매주 우리 주변의 건축에 대하여 글을 연재하고 있다. 뭔가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 1년. 연습한다는 기분으로 블로거들이 맛집 후기를 쓰듯 건축 공간의 후기를 작성하여 올렸는데, 그것이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요새는 위클리 매거진으로 글을 올리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댓글을 달고, 공유도 한다. 얼떨떨하다. 그러다 보니 편하게 툭툭 글을 올리던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오해가 생길 만한 단어 또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글은 글쓰기 시행착오에 대한 고백.
건축 후기를 쓰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쉽게 건축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건축가가 없어서인데, 명함에 건축가라고 적혀있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글들이 잡지와 책 속에는 너무나 많다. 대부분이다. 건축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러니까 여러분이 독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건축계의 잘못이다. 나도 잡지의 글들은 너무 어려워서 덮어버린다. 그림만 본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뭐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나머지 건축가들이 온갖 한자들과 영어들을 함축해서 사용해서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고 있고 건축을 직업으로 삼아 돈을 벌기 시작한 지 2년 차밖에 되지 않아 건축 용어에 그리 익숙한 것도 아닌데도, 내가 쓰는 글에는 자연스럽게 건축 용어가 툭툭 튀어나오고 만다. 글을 다듬을 때 그런 전문용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쉽고 일반적인 단어를 찾으려고 자주 검색해 보고 있는데, 쉽지 않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단어들.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를 일컫는 단어. 예를 들어 네모 반듯한 건물이라면 "매스가 참 네모나네."라고 말하고, 아주 복잡한 형태의 건물이라면 "매스가 굉장히 복잡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전체적인 형태를 말할 때만 쓰이는 단어이고, 보통 설계하는 사람들은 '매스 스터디'라고 하는 단계를 많이 거치게 되는데,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을 잡는 단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세모난 지붕의 모양.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기울어진 형태의 지붕 모양으로서, 보통 집을 그려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박공지붕의 집 모양을 그린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보통은 박공지붕의 집을 상상하는 데도 '박공'이라는 단어 자체는 낯설다.
격자.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선. 보통은 "그리드에 맞춰"라고 많이들 말한다. 그리드에 맞추라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적인 안내선에 열과 오를 맞추라는 말이다. 그리드는 건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 테다.
공간의 용도. 공간이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 카페, 학교, 병원, 식당 등의 구분을 말한다. "프로그램이 여러 개"라고 말하면 여러 용도로 그 공간이 쓰인다는 뜻이다. 크게 나누기도 하고, 한 프로그램 안에서도 기능에 따라 세분화된 프로그램으로 나누어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집을 일컫는 '주거'라는 큰 프로그램 안에도 밥을 먹기 위한 부엌이 있고, 신발을 벗어야 하는 현관이 있고, 거실과 방들로 나뉜다.
공간의 개념(Concept)을 쉽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놓은 그림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공간에 존재하는 동선이나 공간의 프로그램이 갖게 되는 연관성과 효과, 개념의 이해 등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도면에 화살표로 간단하게 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면이나 3D 이미지를 단순화시켜서 텍스트와 각종 기호를 이용해 표현한다.
건물의 주된 입면. 파사드는 동양의 전통건축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건물의 정면이 굉장히 중요한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사방이 보이는 한옥 등의 건축물과 다르게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건축물들은 옆모습보다는 앞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건물의 옆모습보다는 앞모습을 중요하게 여겨서 디자인에 힘을 주곤 한다.
부재를 삼각형 모양으로 이어서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 형태. 다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건축에서는 보통 강당이나 실내 운동장, 공연장, 공항 등 대형 공간을 설계할 때 천장에 이용된다.
건물의 1층 부분을 벽 없이 기둥으로만 지탱하는 건물의 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르 꼬르뷔지에에 의해서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하나로 정의되기도 하였는데, 한국에서는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에서 1층을 필로티 구조로 하여 주차장 등으로 활용한다.
건물의 일부를 받칠 때, 양쪽에서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 끝에서만 모두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구조를 캔틸레버라 한다. 줄여서 "캔티"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자주 부른다. 구조를 풀어낸다는 뜻에서 "캔티로 풀어서"라고 말한다. 한쪽을 기둥 없이 띄우고 싶다는 뜻이다.
켄틸레버 구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에서 잡아주는 기둥 및 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조금이라도 건물을 캔틸레버로 푼다면, 건물이 가볍게 떠 있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이 자주 애용하는 구조다.
전면이 모두 유리로 마감된 건물을 강남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마감 없이 모두 유리로 마감된 것을 커튼월이라고 부른다. 원래의 뜻은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외벽이지만, 보통 유리를 뜻한다.
폭이 좁은 나무 등의 부재를 일정 간격을 두고 수평으로 배열한 것. 외부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바깥 풍경이 어느 정도 보이도록 하기 위해 쓴다. 벽으로 100% 막고 싶지는 않은데 햇빛 등을 차단을 하긴 해야 하는 경우에 루버를 세워 벽 역할을 하도록 한다.
최대한 간단하고 짧게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더 정확한 정의와 다양한 예시들은 간단한 검색으로도 사전과 다른 블로그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따로 옮겨 적진 않았습니다. 다만 혹시라도 제 글에서 위와 같은 단어가 나온다면, '아, 그런 느낌의 단어구나.'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충분합니다.
*그림은 사람그림그램 님이 도와주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요새는 인상에 남는 사람들을 그리는 데 푹 빠져있습니다. 텀블러 /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