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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Feb 26. 2017

건축해도 최저임금은 받아야 한다

도제식 교육이란 이름의 변명

01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법률, 노동법


학교 다닐 때에는 한 번도 내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은 졸업을 하기 전까지도 나에게 딴 세상의 이야기였고, 어딘가에서 배달 알바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무지했다. 내가 해 본 알바라고는 엄마, 이모가 소개하여줬던 과외밖에 없었으니 더 그러했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나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 죄송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 같았다. 근로자라는 말도 그랬다. 잘못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오자 뉴스에 나오던 많은 근로기준법 관련 이슈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나는 노동법을 알았어야만 했다. 교양으로라도 법률 관련 강의를 들었어야 했다고 지금에서야 후회를 한다. 알지 못하니까, 행동을 할 수가 없다. 회사와 근로 조건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가 없다. 회사가 정해서 주는 월급, 주는 휴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월급은 최소한 얼마를 받아야 하고, 휴가는 얼마나 쓸 수 있어야 하는지 회사를 들어와서야 알게 되었다. 내 권리는 어떻게 찾는지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고, 배우려는 노력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와서는 근로기준법을 포함하여 생활 관련 법률을 중고등학교 때 과목으로 만들어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법은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법률이다. 우리는 사람을 때려서도, 물건을 훔쳐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학교와 가정 안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교육을 통하여 오랜 기간 배우기 때문에 이제는 본능적으로 안다. 하지만 노동법은 그렇지가 않다. 학교를 벗어나 처음으로 알바를 구하게 된다면, 사장이 50만 원만 주고, 일을 도와달라고 한다면 기꺼이 '도와'주러 간다. 본인이 얼마큼 일하는지도 모르고 50만 원에 감사해한다. 엄연한 불법인데도 그렇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학교에서는 근로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는 조금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TV 광고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라 말하고, 대기업에서 임금을 떼먹었을 때 대기업의 이미지 자체가 휘청 한다. 이제는 모두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건축 설계 쪽에서는 최저임금을 받으려는 움직임조차 없다.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다 억울할 정도로 많다.




02 건축을 해도 최저임금은 받아야 한다


건축계에는 이런 인식이 있다. 건축사사무소에 일하러 온 학생이 월급이 얼마인지 물으면, 건축에 열정이 없고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일을 배우러 왔으면서 돈을 따지다니'라고 생각한다. 도제식 교육이 이렇게나 변질되었다. 소장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학생이 먼저 '돈을 보고 여기에 왔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월급에 대한 것은 일체 묻지 않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본인이 얼마를 받게 되는지 알게 된다. 나도 그랬다. 심지어 어떤 회사의 소장은 월급을 물었던 학생을 두고 '어떻게 월급을 물어볼 수 있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건축이 아무리 숭고하게 여겨져도, 결국 하나의 직업일 뿐인데 그것을 많은 설계하는 사람들은 대놓고 인정하지 못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5년 간의 건축 교육은 우리로 하여금 건축을 종교처럼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최저임금도 받지 않으면서, 부모님한테 용돈 받아서 돈 쓰면서 일하도록 만든 것은 대학교의 건축 교육이다.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애초에 학교에서부터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그것은 외부 설계 사무소에서 학교로 설계 과목 강의를 가르치러 온 강사들이 학생들을 '인턴' 명목으로 회사로 스카우트하여 갈 때부터 시작된다. 아니면 같은 학교 선배님이 소장으로 있는 설계 사무소에서 일손이 급히 필요하다고 하여 재학생들에게 연락이 올 때부터 시작된다. 방학 때 일을 배우면 좋겠지, 나중에 졸업하고 나면 더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학생들은 별 타협 없이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일을 한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최저임금도 채 다 받지 않으면서 모형을 조금이라도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다이어그램을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그리려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열정 페이가 여기 있다. 멀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사람이다.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은 살아가기 위해선 필수적이다. 살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최저 금액이라고 정해놓은 금액이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마저 지키지 않는 회사라면, 아무리 뛰어난 작품들을 줄줄이 내는 곳이더라도 다닐 가치는 없다. 내가 받았어야 할 돈과 내가 가졌어야 할 시간을 다 바쳐서 남의 이름으로 지어내는 작품의 부품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03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구두 계약, 최저임금보다 적은 월급, 야근, 주말근무. 건축계에 만연한 것들이다. 애초에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 간편할 테지만, 어쩌다 보니 일을 이미 하게 된 경우들이 주변에 많았다. 일을 시작하고 나니, 어딘가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대부분의 경우는 몇 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일하기로 한 알바의 형태여서 학생들은 그 기간 동안 꾹 참고 만다. 회사는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악용한다. 몇 개월 동안 일한 알바들이 구태여 신고를 하는 경우는 드물 테고, 신고를 하더라도 애초에 몇 개월짜리의 계약이다 보니 뱉어내야 할 돈이 적으니까.


어느 날은 옆에서 보기 너무 답답해서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첫 페이지에 임금 체불에 대한 상담 링크가 떠 있어, 들어가서 읽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국번 없이 1350을 누르고, 상담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번호를 누르면 바로 상담가와 연결된다. 만약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일을 했다면, 최저임금만큼의 금액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냐고 묻자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턴의 경우엔 최저임금의 90%까지 받을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일을 하기로 애초에 약속이 된 경우에는 100% 모두 받아야 한다고 했다. 원한다면 형사 재판까지 갈 수 있지만, 판결은 재판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나는 재차 다시 물었다. 만약 계약서가 없이 구두 계약으로 일을 한 경우에는 가능한가. 계약서가 없을 경우에는 지정 감독관이 여러 서류를 함께 검토하여 판단할 것이라는 답변. 하지만 계약서가 없으니, 상담사는 증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애초에 최저금액보다 낮은 급여에 근로자가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점.


일단 계약서가 없으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신고를 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발뺌하면, 일은 한층 복잡해진다. 많은 머리 아픈 일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계약서는 꼭 써야 한다. 한 달짜리 알바든, 신입사원이든, 계약직이든 모두 같다. 계약서부터 쓰고 나서 일하자.


그렇다면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상담사에게 묻자, 해고 등의 불이익을 당했다면 그 건으로 다시 신고를 접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애써 신고를 했더니 불이익을 받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 절차를 밟아 신고를 해야한다. 행정이란, 단계가 많아 일이 수월치가 않다. 임금체불 신청시 처리기한은 25일이나 된다.


묻고 싶은 것을 다 물어보고는 전화를 끊었다. 상담은 친절했지만, 신고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절차는 복잡하고 준비할 것이 많았다.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빼곡하다. 고용주와의 합의가 가장 빠른 방법임은 확실했다. 조금 더 법과 행정절차가 근로자에게 편안한 방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복잡한 절차를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신고하기를 꺼린다. 그들의 거부감은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불이익도 물론 있겠지만, 더 큰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알바를 하러 온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줬을 리 없다. 상대방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 알아서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주고 용서까지 해주며 눈을 감는 학생들은 착한 걸까, 순진한 걸까.





최저임금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좋은 글을 브런치 내에서 발견했다.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쉽다. 


https://brunch.co.kr/@taxsquare/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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