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의 출장
여느 때와 같은 아침, 가족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다 문득 화요일에 예정된 출장에 대해 말을 꺼냈다.
"엄마, 아빠! 나 내일은 청주 가."
"청주? 왜?"
"땅 보러."
부모님은 웃었다. 해맑게 땅을 보러 간다는 딸의 모습이 우스웠나 보다. 부동산 아저씨, 아줌마들 아니면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사모님들이 밍크코트를 두르고 땅을 보러 가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건축을 공부하거나, 실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땅을 꽤 자주 보러 다닌다. (땅이 아니라 건축주가 무엇인가를 짓고 싶어 하는 대지라고 말해야 옳겠다.) <신사의 품격>에서 그려진 것처럼 멋들어진 책상 앞에서 그림만 그리지도 않고, <건축학개론>에서 나온 엄태웅처럼 밤을 꼴딱 새우고 책상 위에서 불쌍하게 출근 시간까지 자고 있지도 않는다. 대신 건축가들은 수없이 다음, 네이버 지도로 땅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열심히 상상해 낸다. 지도로 봤으면, 그다음엔 직접 발걸음 한다. 아무리 멀어도, 해외가 아닌 이상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방문한다. 그 땅을 직접 밟아보고, 어떤 공간이 알맞을지 연상한다. 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은 땅을 보면 건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디자인이 뚝딱 눈에 그려진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그 정도의 레벨까진 오르지 못했어서 땅의 형상을 까먹지 않도록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서 돌아온다.
신도시 같은 경우에는 땅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구도심 같은 경우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빽빽하게 치솟은 건물들 사이에 치열하게 비집고 있다. 어느 동네, 어느 땅에 자리 잡고 있든지 대지를 보러 가서 측량을 하고, 기록을 한다. 한 번에 걸쳐서 부족하다면, 두세 번이고 또 간다.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이라면 두세 번으로도 부족하다.
답사는 건축가들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기 전까지 행해져야 하는 일이다. 종이에 그린 선들은 바닥으로, 벽으로, 천장으로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밑바탕은 정확해야 한다. 말하자면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혹여라도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무엇인가를 적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만나면 도둑놈이 아니라 건축가가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보길. 보통은 검은 옷을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