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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01. 2017

시간을 내려 마시는 다방

커피 한약방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게스트하우스 화도 공간(구 모두의 별장)에서 대표인 조한비 님이 구워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면서, 게스트하우스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직접 만든 가구들에 대해서 물었다. 건축 현장에서나 많이 볼 수 있는 자재들을 가지고 뚝딱뚝딱 만든 침대와 소파, 세면대와 같은 가구들은 모두 건축가 아버지를 둔 그의 작품이었다. 나의 질문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나에게 커피 한약방에 혹시 가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곳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고, 꼭 가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자개로 만든 가구와 공간이 아주 멋들어진 곳이라고. 




00 좁고 구불구불한 서울의 골목


내 친구 빔은 서울로 올라와 6년을 내리 왕십리에서 살다가 작년에 이사를 갔는데, 새로 다니게 된 직장 근처로 집을 찾다 보니 강남으로 터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 빔이 이사 간 강남역 코앞의 오피스텔 18층으로 나는 종종 놀러 가곤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주변에 사 먹을 것도 많고 강남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시티뷰가 있는 그 집이 좋았다. 하지만 빔은 그 집에 살았던 1년의 시간 동안 틈만 나면 강북으로 놀러 오곤 했고, 다시 강북으로 이사를 오겠다 노래를 불렀다. 강남은 집 같지가 않아서 싫다고 했다. 명실상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북을 사랑하는 강북 러버라 하겠다. 빔이 그렇게나 강북을 사랑하는 이유를 나는 강북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골목들에게서 찾는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다들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높이 솟은 빌딩 숲과 강남을 가로지르는 왕복 10차선 도로를 떠올리곤 하지 않을까 감히 추측한다. 먹을 것도 많고 온갖 즐길 거리가 널려 있어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 같은 이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을 산다. 하지만 강을 건너 옛 한양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지금도 우리는 아주 좁고 구불구불한, 시간이 멈춰버린 서울의 골목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과 공간들도 함께 존재한다.



강북, 그러니까 사대문 안의 서울에 왜 그렇게 좁은 골목들이 많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는 개발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뜸 결론을 내고 말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이전에 왜 골목이 그런 크기였는지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옛 서울에 흐르던 많은 물길들이 자연스레 서울을 관통하는 수많은 길들을 내었고, 길을 둘러싸고 건물들이 생겼는데 애초에 길은 지금의 너비를 가질 필요가 없어 사람들만 지나다닐 수 있는 폭으로 생겨났다. 아직도 그 폭이 유지되고 있는 북촌과 같은 동네를 방문해 보면 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북촌뿐 아니라 을지로에서도 아주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린 그러한 골목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에게서 나온 너비의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복 10차선에서 놀기는 힘들어도, 두세 사람 겨우 지나다닐 폭의 골목에서는 쉽게 많은 행위들이 일어난다. 좁은 폭의 길에서는 길이 오로지 통행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마당과 같이 쓰이는데, 할아버지들은 골목에서 바둑을 두거나 할머니들은 의자를 내어다가 야외 벤치로 만들곤 했다. 아이들은 골목 안에서 수많은 놀이들을 만들어 냈었다. 다양한 방식의 길 사용법은 골목들이 차차 없어지면서 함께 많이 사라졌는데, 여기 커피 한약방은 을지로에 남은 한 골목을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01 건물의 경계를 허무는 짓


우린 어쩌면 강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언제부터 건물의 경계를 공간의 경계로 인식하여 왔을까? 하나의 필지(땅의 경계)를 구분지어서 생각하고, 건물과 건물을 나누어서 저곳은 너의 땅, 이곳은 나의 땅이라고 규정지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커피 한약방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인지했을 때 마치 이마에 딱밤을 아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아주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두 건물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커피 한약방은 두 건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긴밀하게, 마치 그 좁은 골목을 자신의 마당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찾기가 쉽지가 않다. 아주 세심하게,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찾는 느낌으로 천천히 걸어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 한약방은 들어와 달라고 건물 전면에서 소리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꽁꽁 숨어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저 골목 뒤편의 간판을 발견했으면, 이제 용기 내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곳이 입구가 맞다.



골목을 걸어서 들어오는 동안, 시간을 거꾸로 걷는다. 골목 중간에는 버젓이 커피 한약방의 입구가 두 개나 기다리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이 1층, 오른쪽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을 취하고 있다. 원한다면 1층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지만, 몇 좌석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2층으로 커피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건너 이동해야 한다.



골목에는 작은 벤치들과 의자가 놓여 있다. 혹여라도 자리가 없을 때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커피를 들고 나와 밖에서 먹으라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꽤나 운치가 있다. 마당이다. 


최근에 다시 방문해 보니, 커피 한약방에서 새로 낸 해민당이라는 디저트 카페가 생겨 영업 중이다. 이 좁은 골목은 더 커피 한약방이 점유하게 되었다.



커피 한약방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의 부분들의 창호는 모두 1930년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나무 창호로 교체되어 있는데, 그래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그 모습이 꽤나 생경하게 다가온다. 창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층을 올라서면 건너편의 카페 공간이 훤히 보인다.





02 지금 이전의 어느 시대


지금과 다른 시대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미디어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소재였다. 꼭 주인공이 어느 시대로 시간 이동까지 해내진 않아도 현재와 다른 시대의 모습, 소리, 사건들을 간접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시대극을 즐겨 보게 되었다.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공간으로 우리를 다른 시대로 데려가 주는 건축물은 흔치 않은데, 우리 주위의 과거 건축물들은 대개 사용되지 않는 죽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복궁에 들러도, 민속박물관에 방문해도 그 아름다움에는 관계없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역시 사용되지 않는 공간에는 힘이 없다. 그런데 여기, 커피 한약방은 조금 다르다. 어둡고 으슥한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커피 한약방이 자리 잡고 있는 '을지로 삘딍'의 문을 여는 순간, 카페라고는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찻집? 공방? 그것이 아니면 정말 한약방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보통 카페의 인테리어를 계획할 때에는 커피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어주는 바 가구의 디자인이 굉장히 중요하다. 카페의 첫인상은 보통 이곳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자개라니. 조개의 껍데기를 잘라내어 붙여 만든 가구가 이곳, 커피 한약방의 첫인상이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커피를 시키면 왠지 정성스럽게 한 방울 한 방울 내려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개장을 이용한 가구 위로 천장에 매달린 수납장은 오래전 어디선가 쓰인 문짝이다. 그것만으로도 생각의 전환이라 할 만 한데, 거기에 조명까지 설치했다.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의 작품이다.



벽을 뜯어내고 매입해 버린 가구, 벗겨진 페인트, 오래된 고재들이 이곳의 분위기를 규정짓는다. 넓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부분까지도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커피콩은 바로 이곳에서 볶아진다.





1층에서 밖으로 나와 바로 골목의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가야 조금 더 많은 좌석을 가지고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골목에서 바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굳이 커피 한약방이라는 간판을 붙여놓지 않아도, 보자마자 이곳이 커피 한약방의 공간이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자개 때문이다.



벽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자개장의 문짝과 걸려 있는 동양화. 오래된 고재와 나무 판재로 마감된 벽. 이 모든 것을 열린 한 공간 안에서 사람들과 공유한다.



하나로 열린 공간에서 여러 종류의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공간 구성인데도 워낙 다른 종류의 가구와 마감재를 가져다 놓으니 느낌이 일반 카페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재밌는 것은 이 오래된 건물의 기둥을 꾸민 방식인데, 나무 판재로 감싼 뒤 아치를 그리면서 다른 기둥과 이어줬다. 구조적 역할을 하는 기둥이기도 하지만, 다른 기둥들과 부드럽게 연결되면서 공간을 구분 짓는 역할도 하고 있다. 벽과 기둥,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생겨났다.




2층의 천장은 흰 페인트로 마무리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천장 고를 높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오래된 건물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층고가 낮아 아무리 천장을 뜯어내고 뜯어내도 높일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무 마감재의 어두운 색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할머니의 예전 집에도 저렇게 생긴 큰 자개장이 있었다. 할머니의 방에 가면 항상 어떠한 냄새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 가구의 나무에서 났던 냄새였던 것 같다. 그 특유의 냄새가 잊히지 않고 아직도 내 어딘가에 남아 있다.


커피 한약방은 바로 그런 향수를 목표로 하고 만든 공간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졌던 자개장과 서예, 동양의 그림들 그리고 60, 70년대에 많이 사용했던 나무 마감까지 우리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다. 그 안에서 다시 나는 할머니 집을 방문한 꼬마가 되고, 부모님은 한층 젊어진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렇게 과거의 공간 안에서 커피를 앞에 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을 입고, 마시느냐만 달라졌을 뿐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산다는 것은 변함없다. 





커피 한약방에 같이 방문했던 친구인 양양이는 이곳을 둘러보더니 집념이라고 했다. 건축가는 못할 일이라고. 그것은 공간을 구성하는 바닥, 벽, 문과 창호와 같이 건축적인 요소뿐 아니라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가구와 조명, 심지어 커피 한약방에 쓰인 모든 서체까지도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금 시대에 쓰이고 있는 여러 물건들의 기능들이 컬래버레이션 되어 있다.



자개장 위에서 커피를 내리는데, 이 자개장에는 커피를 내릴 때 흐르는 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배수 처리가 되어 있다.



빨대와 냅킨 등 카페에서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을 나무 장에서 꺼내야 한다. 서랍을 항상 열어 놓아 카페를 방문하는 이들이 쉽게 원하는 물품을 꺼내갈 수 있도록 한다. 서랍이라고 꼭 닫혀있지는 않아도 되는 것.



이곳을 정말 한약방처럼 보이게 하는 나무 장부터, 고재를 개조해 만든 쓰레기통까지 있다. 그중에서도 위의 오른쪽 사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쓰레기통 같은 경우에는 좀 재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는데, 오래된 나무 가구와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의 만남이 이질적이지만 귀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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