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Aug 25. 2017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곳

선농단 역사문화관

00 낯선 이름


'아키 데일리'라는 웹진을 아시는지? 훌륭하게 또는 독특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의 사진과 도면이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하게 올라오는 곳인데, 이름처럼 매일 새로운 건축을 구경할 수 있고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서 종종 찾는 웹사이트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건축 설계 시 종종 좋은 사례를 찾기 위해 들어가 보곤 하는데 스크롤을 내리던 중에 우연히 처음 보는 한국의 건물을 만나게 되었다. 온통 미국, 유럽, 남미 등의 건축물을 보다가 한국에 있는 건물을 보니 왠지 반갑다. 위치는 분명 Seoul.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되는 문화시설. Seonnongdan이라고 쓰여있다. 선농단이라고 읽힌다.


낯선 이름이다, 선농단. 검색을 해보니 건물의 정식 명칭은 선농단 역사문화관. 2015년에 현상설계*를 통해 새로 지어진 일종의 박물관으로, 우리 동인 설계사무소가 설계를 맡았다. 낯선 이름의 문화관과 설계 사무소. 그런데 사진을 보니 익숙지 않은 공간의 짜임이다. 멀지 않은 거리라서 1호선을 타고 직접 건물을 보러 제기동으로 향했다.


*큰 건물 같은 경우에는 해당 부지에 지어질 수 있는 다양한 안들을 대회 형식으로 받아서,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설계안을 낸 회사에게 일을 맡긴다. 건축 설계 대회라고 얘기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보통은 나라에서 발주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문화시설이나 복지시설이 현상 설계를 통해 지어진다.




01 아래로 숨은 박물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들은 보통 웅장하다. 크고, 거대한 공간에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유물들이 동동 놓인다. 최신 설비로 둘러싸인 전시실과 보관실 안에서 문화재들은 소중하게 보존된다. 최대한 현재의 상태대로 오랫동안 손상되지 않은 채로 유지되기 위해서 햇빛을 완벽히 차단하고,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채 보관된다. 직접 손을 대어 만지거나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된다. 그것이 박물관이 문화재를 보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모든 문화재가 그런 방식으로 보존되는 것일까? 특히 건축물의 형태로 있는 문화재들의 경우에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서울 안에 존재하는 경복궁, 경희궁, 창경궁 등의 5대 궁이나 옛 서울을 둘러싼 4대 문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원래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근대의 건물들은 어떠한가. 근대에 지어진 건물들을 모두 현 상태대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때에는 도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아무런 쓰임을 하지 않는 것이 결국 답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역으로 쓰였던 일제 시대의 건물은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의 문화시설로, 기무사로 쓰였던 건물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일부분으로, 일본의 유명 백화점으로 쓰였던 건물은 현재 신세계 백화점 본점으로, 경성재판소의 정면 외벽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입면으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최근에 오래된 고가도로마저도 새로운 쓰임으로 바꿔 쓰는 서울로의 경우도 목격했다. 이와 같은 건물들은 모두 문화재를 보존하는 다른 방식의 예가 된다. 건축의 경우에는 큰 면적을 차지하며 많은 이해관계가 엮여 있어 그대로만 유지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새로운 방식의 쓰임을 부여하는 것도 문화재를 보존하는 또 다른 해법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경우가 존재한다. 문화재이긴 하나 그것이 건물의 형태가 아닌 외부 공간인 경우다.



선농단은 종묘와 사직단처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왕이 제사를 드리던 제단이 있던 곳으로, 그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일제시대와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위치뿐 아니라 원래 모습과 다르게 왜곡되어 방치되었다. 2015년 현상설계를 통해 선농단을 복원함과 동시에 선농단에 대해 알리는 역사문화관을 계획하게 되었다.



선농단은 제단이 있는 외부공간이었기 때문에 기존 선농단의 크기에 맞춰 복원하려면 건물은 지상에 넓은 면적을 차지할 수 없었다. 기존에 어린이놀이터가 자리했던 부지를 모두 흙으로 덮어 기록 속에 존재하는 선농단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고, 선농단에 대해 소개하는 역사문화관은 아래로 내려갔다. 몸을 낮추고, 엎드렸다. 모든 외부 공간을 선농단에게 그대로 양보하면서 번쩍 들어 올려진 입구만이 선농단 역사문화관이 유일하게 바깥으로 드러낸 얼굴이다. 그리하여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선농단이라는 문화재를 옛 모습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식으로 쓰이기 위해 모든 공간이 지상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 하나 없이 지하에만 존재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사진에서처럼 도로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가지고 있지만 내부는 모두 지하 공간이다.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이 건물에서 가장 높은 부분이다.




02 위에서 재조립된 선농단


여느 다른 박물관과 미술관과는 다르게 선농단 역사문화관이 전시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찾을 수 없다. 복원된 거대한 선농단을 건물이 받치고 있어, 선농단을 보기 위해서는 건물의 위로 올라가야 한다.



건물에서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없기 때문에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입구로 들어가서는 선농단을 만날 수 없다. 입구를 그대로 지나치고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곧 선농단을 설명하는 안내표지판과 함께 위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건축가는 먼저 사람들을 향나무로 안내한다. 위로 올라와도 4개의 문으로 둘러싸인 선농단으로 먼저 들어가지기보다는 언덕과 바닥의 석재 디딤판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동선이 정해진다. 향나무로 향한다.


선농단에 자리 잡은 이 향나무는 수령이 600년 정도 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향나무는 대개 자라면서 휘어지는데, 이곳에 있는 나무는 하늘을 향해 위로 곧게 자랐다. 이 향나무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크고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선농단의 위치를 지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농단은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화와 함께 그 위치와 크기가 계속하여 변하였는데, 그때마다 이 향나무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농단의 원래 위치와 크기를 복원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다 해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향나무를 지나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홍살문을 지나면 비로소 선농단에 들어선다. 선농단은 총 4개의 문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에서도 바깥 부분을 외유라 하고 안쪽 부분을 내유라 하여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조선 전기의 기록에 선농단에 대한 대략적인 도면이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선농단도 이에 근거해 복원되었다. 최대한 기록에 근거해 복원되었기 때문에 그 규모가 남북 방향 93m로 큰 규모로 자리 잡게 되었다.



네 개의 문으로 둘러싸인 외유 안에, 다시 내유 안으로 들어서면 선농단에서도 제단이 나온다. 사각형의 공간은 잔디 없이 흙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농단은 복원될 당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높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농단을 올라가면서 그 의도를 짐작해 볼만 하다. 선농단은 향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 외유보다는 내유가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서 선농단을 바라보라는 건축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겠다.



선농단의 제단을 지나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홍살문에 다다르면 선농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높은 홍살문을 지나면 4개의 홍살문과 선농단의 제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대로 복원된 도시 안의 선농단과 그 뒤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선농단은 도시가 발전됨에 따라 위치를 옮기기도 하고 그 크기가 축소되기도 하였는데, 결국 지금의 형태로 자리하게 되었다. 현 상황에 따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문화재의 위치와 형태를 임의로 옮기다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하지 않았는지.




03 시간이 새겨진 무의 공간


길은 모두 하나의 묵직한 검은 공간을 감싸고 생겨났다.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입구를 들어서 로비를 지나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전시 공간들은 모두 하나의 중심점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것을 건축가는 '시간의 방'이라고 불렀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무(無)의 공간'이라고 느꼈다. 처음 아키 데일리의 사진을 보고 가보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바로 이 공간을 위해서다.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비워져 있던 공간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벽을 따라 선농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선농단에 대해 1도 알지 못했던 내가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벽을 따라 걸으면서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농단이 뭔지, 이 공간이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아직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었는지.


선농단 역사문화관에 들어와 전시를 따라 읽으며 그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게 되었지만, 박물관 위에 위치한 선농단을 걸을 때에도 이 공간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둘러싸인 난간과 조경에 의해서 보호되고 지켜지던 곳. 건축가는 선농단 역사문화관에 대해서 '두 개의 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하였는데, 하나는 복원된 지상 레벨의 선농단이고 둘째는 선농단 지하에 위치한 역사문화관의 전시관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켜를 이어주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시간의 방이다. 선농단의 레벨에서도 시간의 방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선농단의 레벨에서만 이곳을 바라봤을 때에는 의문이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공간일까 감이 오지 않는다. 심지어 주변을 둘러싼 난간과 조경 덕분에 다가서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지상에서 목격했던 이 공간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내려와서야 알게 된다.


선농단에 대해 전시되어 있는 복도와 그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을 지나면, 검은 돌덩이 같은 공간이 공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건축가가 설명하기를, 위에 자리한 선농단의 켜와 아래에 자리한 역사문화관을 연결할 수 있는 장치로서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시간의 방'은 좁다. 좁고, 선농단 역사문화관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늘과 맞닿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우리는 바깥세상과 차단된다. 건물 안에서 들리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선농단 위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도시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절대적인 고요와 고독. 시간의 방에 들어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적과 하늘뿐이다.



건축가는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무얼 느끼도록 하고 싶었을까? 건축가인 나에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다. 무엇을 위해 이러한 공간을 만들었는가. 다른 공간을 제외하고, 독립적으로 서 있는 이런 공간을 분명 다른 전시 공간의 면적을 할애해가면서 만들었을 테다. 그렇다면 이것은 건축가의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추측하기로 건축가는 아마 이곳에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느끼게 하지 않았으면 했을 수도 있다. 그저 차단되는 많은 소리들과 장소들. 그것이면 충분했을 수 있다.


사실 시간의 방이라 불리는 이곳은 기존에 선농단이 위치했던 공간의 재현이다. 앞서 말했던 향나무를 기준으로 하여 과거에 선농단의 제단이 존재하는 곳을 그대로 반전시켜서 가져온 공간이 바로 건축가가 만들어 낸 시간의 방이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와 흙으로 마감하여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시시때때로 그 안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아크릴 기둥을 벽에 박아 넣었다.



실제로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중심에 서 있는 '시간의 방'에 대한 설명을 보면 굉장히 친절하다. 시간의 방이 들어서게 된 이유뿐 아니라 시간의 방 외형에 있어서도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발견된다. 그 한 해에 있어서도 농사가 잘 지어달라는 바람을 가지고 지내는 제사의 특성상 날씨가 굉장히 중요한데, 가운데 자리 잡은 시간의 방에는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도 농사에 중요한 24절기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선농단 역사문화관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일 것이다.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선농단이라는 문화제를 보여주고, 알리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비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있어 그 지역의 높이 솟은 랜드마크가 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문화재를 알리고 보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면서, 선농단 역사 문화관에 대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사진 하나를 첨부한다. 김재경 작가가 찍은 사진인데, 사실 시간의 방은 아래의 사진과 같이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의하여 아크릴 봉의 그림자가 길게 내려와야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그러한 날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설계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혹 날씨가 좋은 날에 이 글을 읽고 사람들이 방문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사진을 첨부한다.



또한 아키 데일리에서 선농단 역사문화관을 알게 되었던 경로는 아래와 같다.

http://www.archdaily.com/776445/seonnongdan-wooridongin-architects



이전 05화 요리하는 도서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