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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건축 읽기
by 선아키 Aug 18. 2017

요리하는 도서관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00 보고 듣고 여행하고 맛보는 도서관


그래, 솔직히 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처음 가봤을 때의 일이다. 학생이었던 나는 현대카드가 당연하게도 없었고, 결국 엄마(카드)를 앞세워 문 앞에서 카드를 긁고 동반 1인의 자격으로 입장했다. 심지어 열람실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를 해야 한다고, 1층에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기다리라는 직원의 말에 커피를 사러 가니 현대카드로만 결제가 된단다. 심지어 현금도 안 받는다고! 그때는 정말 좀 너무하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이름이 당당하게 적힌 현대카드를 언제나 지갑 한편에 가지고 다닌다. 현대카드를 쓰냐고?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현대카드가 아니라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입장권이다.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고, 이제는 당연하게 커피를 살 때 현대카드를 내민다. 내가 현대카드를 쓰는 곳은 딱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한 곳뿐이다. 내 신분증도, 가방도 모두 맡기고, 사진도 카메라로는 찍지 말라고 해서 휴대폰으로만 찍었다. 맞다. 난 길들여졌다.


혹여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먼저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현대카드는 2013년 가회동의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시작으로 청담동의 트래블 라이브러리, 한남동의 뮤직 라이브러리까지 순차적으로 특정 주제를 가지고 도서관을 지어 왔다. 그리고 올해엔 신사동에 쿠킹 라이브러리를 열었다.



어떠한 한 주제를 가지고 도서관을 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린이 도서관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현대카드 말고 제대로 특정 주제의 도서관을 이뤄낸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도서관도 아니고 지자체도 아닌 현대카드가 해냈다. 심지어 훌륭하게 해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직접 선정한 각종 외서와 희귀본들이 현대카드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모아졌고, 건축은 디자인, 여행, 음악, 그리고 요리가 담길 아주 훌륭한 그릇으로 빚어졌다. 영감을 불어넣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전문가들이 힘을 합친 결과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가장 최근에 지어진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쉽게도 마지막 라이브러리다.




01 요리는 눈으로 보고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는 지난주에 소개했던 퀸마마마켓과 도로 하나를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퀸마마마켓의 4층 테라스에 들어서면 바로 눈 앞에 언뜻 공장 같은 외관이 먼저 눈에 띈다. 투박해 보이는 겉모습 때문에 쿠킹 라이브러리라는 간판을 제대로 달기 전까지, 지어지는 과정을 언뜻언뜻 지나다니며 봤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외관에 쓰인 재료의 이름은 폴리카보네이트. 약간은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보통 물결 모양의 반투명한 플라스틱 재료를 일컫는다. 건물의 모든 면을 폴리카보네이트로 일관되게 덮었다. 도시에 지어지는 건축물의 외장재로는 쉽게 보기 힘든 폴리카보네이트는 플라스틱 종류이기 때문에 약해 보이는 데다가 고급스러운 느낌보다는 가벼운 느낌이 더 먼저 들어 보통의 건축주가 선호하는 마감재료는 아니다. 확대된 골판지처럼 생겼기 때문에 본드 종류로 마감이 불가해 모두 나사를 조여서 고정시켜야 하는데, 나사가 노출되어 깨끗하고 미끈한 건물을 얻기가 힘들다. 게다가 투명하다는 것은 때가 잘 탄다는 뜻.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쿠킹 라이브러리에서 외장재로 폴리카보네이트를 고른 이유는 내부에 들어서자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건물의 내외부를 이어주는 재료였다.



쿠킹 라이브러리 곳곳에서 외부의 풍경이 폴리카보네이트의 한 켜를 거쳐서 내부로 전달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의 투명함이 외부의 빛을 내부로 은은하게 들여왔고, 폴리카보네이트의 물결 모양이 외부의 풍경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왜곡해서 전해주었다. 그래서 내부에서는 바깥의 햇빛을 일부 즐기면서, 압구정의 다사다난한 도시의 풍경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도 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샌가 책장은 막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쿠킹 라이브러리 내의 열린 책장들 뒤로 폴리카보네이트가 전해주는 햇빛이 들어오는 모양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쁘지 않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빛이 책장의 책들을 감쌌다. 내부의 조명이 있으니, 강렬한 역광으로 책을 보기가 힘든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신기한 책장의 모습처럼 보였을 뿐.



폴리카보네이트의 형태는 그대로 가지고 가되, 투명함은 버려야 하는 공간이 있다. 다른 땅과 맞닿은 담장이 그것인데, 골강판을 이용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골강판 또한 도시에서 흔히 쓰는 재료는 아닌데, 골강판을 사용한 담장에게서 꽤 도시적인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쿠킹 라이브러리 외부의 정원이 이어지는 곳의 담장이다.




02 향기를 맡고


생물 시간에 우리는 인간이 느끼는 네 가지 맛에 대해서 배웠다. 단맛, 신맛, 짠맛, 그리고 쓴맛. 물론 지금에서야 인간이 느끼는 다른 맛들이 추후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그토록 다양한 맛들이 단 네 가지의 맛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우리가 '맛'이라는 단어로 부르는 감각은 100% 미각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후각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코감기에 걸려서 코가 막혔을 때, 그토록 음식이 맛이 없다. 입맛이 뚝뚝 떨어진다. 이거나 저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게 '맛'에 있어서 향은 중요하다.


자, 이제 질문. 그렇다면 향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란? 아주 간단하다. 공간을 열어두는 것.



위아래가 뻥 뚫린 공간을 건축가들은 흔히 '보이드(Void)'라고 부른다.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위층의 일부 바닥을 뚫어 크게 열린 공간을 만든 곳을 말한다. 보이드 공간을 만듦으로써 아래층에선 개방감을 줄 수 있고, 위층에서는 아래층과의 시선적 연결이 일어난다. 공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비워내는 것이다.


이곳, 쿠킹 라이브러리에는 두 개의 보이드가 존재한다. 1층과 2층에 하나, 2층과 3층에 하나. 쿠킹 라이브러리에 들어서자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첫 번째 보이드 공간이다.



로비 부분을 뚫어내어 보이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낯선 일은 아니다. 미술관이나 호텔 등에서도 종종 개방감을 가지기 위해 이러한 건축적인 방법을 곧잘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쿠킹 라이브러리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저 로비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둘러보니 카페가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음식까지도 사 먹을 수 있겠거니 했다. 반전은 내가 2층으로 올라가 책을 열람하고 있을 때 발생했다.



첫 번째 보이드 공간을 감싸고 있는 2층의 라이브러리에서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1층의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몇 분 후부터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도서관 전체를 감쌌다. 책을 훑어보다가 순식간에 배가 고파졌다. 아, 이렇게 냄새로 사람을 유혹하다니. 눈으로 요리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과 동시에 후각을 통해 음식 향이 밀려들어왔다. 공감각적인 도서관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음식을 사 먹고야 말았다.



두 번째 보이드는 도서관 열람실에 해당하는 2층과 3층 사이의 공간이다. 자칫 답답할 수 있었던 서가들 사이로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났다.



1층과 2층 사이에 뚫려 있는 공간 때문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아래층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2층과 3층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보이드 덕분에 다시 시야는 위로 향한다. 3층에서 뚫려 있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도서관 전체를 모두 함께 밝힌다.


위를 보니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작은 서가 공간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기둥이 없다. 같이 갔던 친구인 빔 덕분에 인장 기둥이 서가를 당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래에 기둥으로 받치는 대신 위에서 당겨서 공간을 띄운 것. 빔에겐 쿠킹 라이브러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고.



또 하나의 열린 공간을 찾자면,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카페 부분을 들 수 있겠다. 쿠킹 라이브러리답게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개의 주방을 마주할 수 있는데, 공통적으로 모두 안이 훤히 잘 보인다. 주방이 잘 보이도록 시야를 열어둔 것. 요리사 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지켜볼 수 있다.



그에 더해 카페 부분에서는 거대한 창을 위로 열어 외부 공간까지 카페의 일부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간이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연장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바깥에서 햇빛을 맞으며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한 잔 해도 좋겠다.





03 만들어 맛보는 것


이곳의 이름이 테이스팅 라이브러리가 아니라 쿠킹 라이브러리인 것인 바로 이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단지 맛보는 것을 넘어 만드는 그 과정에 있음을 쿠킹 라이브러리는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다른 라이브러리들과 차이점은 열람실 내에 위 사진 같은 인그리디언츠 하우스가 있다는 것. 연애를 책으로 배운 것만큼이나 요리를 책으로만 배워서는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테다. 그래서 쿠킹 라이브러리에서는 각종 향신료를 모아놓은 인그리디언츠 하우스가 따로 마련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어떤 책 보다 요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도서관이다.


인그리디언츠 하우스는 2층의 열람실에서 분리되어 박공(경사진 지붕의 형태)의 공간에 따로 마련되었는데, 마치 그린 하우스 또는 식물원을 연상케 했다. 따로 떨어져 있지만, 시각적인 단절은 피하기 위해 유리로 제작되었다.



3층으로 올라서면 작은 서가 뒤로 조리실이 나타난다. 책으로 요리를 읽었으니, 직접 만들어 볼 시간이다. 쿠킹 클래스가 열릴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한쪽에 테라스가 열려 있는 조리실은 깔끔하게 정돈된 1자 주방을 8팀 정도가 가질 수 있게 설계되었는데, 최대한 깔끔하게 주방 공간을 정리하려고 한 건축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4층으로 올라가면 진짜 그린 하우스를 만난다. 2층의 인그리디언츠 하우스와 같은 형태로, 조금 더 길쭉한 공간이 유리로 제작되어 있는데 이곳은 '그린 하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프라이빗 레스토랑이다. 도시를 배경으로, 그린 하우스 내부에 비치된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자연과 도시를 동시에 누리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압구정과 신사가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작은 정원까지 마련되어 있다.



건축물 하나가 이러한 브랜딩과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최대한 치밀하게 조율되는 과정을 무엇과 비유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아마도 발표 PPT 자료를 만드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력과 시간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잠깐 한눈을 팔고 딴생각을 하면 자꾸 사족이 달리고, 말하는 방향이 달라지고,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가 PPT 안에 들어가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서 만들어야 한다. 건축 또한 같다.


그래서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들을 둘러볼 때에는 각각의 주제를 빼놓고선 이야기할 수 없다. 각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요리란 어떤 맛인지,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음악은 왜 듣는지, 디자인은 무엇인지 책과 함께 건축도 읽으면 조금 더 그 주제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게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 밤에 모여서 하는 게임들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화투나 카드를 섞은 뒤, 앞면이 보이지 않게 뒷면을 위로 펼쳐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두 장을 골라 뒤집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모양의 카드가 나오면, 그 카드 두 장을 가져간다.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 이런 게임을 메모리 게임이라고 부른다.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에 들어서면 자꾸만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마치 메모리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왠지 발견하면 뿌듯하다. 카드 한 세트를 내 앞으로 가져온 기분이다. 그것은 세밀한 완벽주의자인 건축가일수록 놓치지 않는 디테일들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것이 분명한데도 그들은 공간의 패턴을 만들고야 만다.



이를 테면, 가장 발견하게 쉬운 것이 바닥의 패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통일성까지는 외관에서 쉽게 알 수 없지만, 마감재의 패턴은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축가의 카드들이다. 이곳, 쿠킹 라이브러리에서는 재료를 모두 달리 쓰면서도 같은 크기의 벽돌과 나무를 써서 패턴을 일치시켰다. 외부에서부터 1층 카페까지 쭉 이어지는 검은색 벽돌과 3층에 자그맣게 자리 잡은 서가의 벽돌 크기의 나무 바닥 마감, 그리고 4층으로 올라와 그린하우스 내부에 다시 이어지는 갈색의 벽돌까지 모두 같은 패턴으로 공간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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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디자이너
사진 찍는 건축가.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것들을 디자인합니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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