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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ug 11. 2017

박공과 박스가 만났을 때

퀸마마마켓

처음 이 건물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봤던 순간의 기억이 선연하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청담 CGV에서 영화를 보느라고 압구정 로데오 역에서 내려 걷기로 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압구정은 나에게 '예전에 핫했었던 오래된 동네' 정도로 인지되고 있었고, 압구정 로데오 역이 새로 신설되었다고 해서 다른 감흥은 없었다. 강남에 사는 한양대 학생들만 매우 기뻐했다. 나는 강남에 살지도 않으니, 압구정과 청담사거리 쪽에 CGV가 있어 때때로 방문하게 되었던 것뿐이다.


그날도 영화를 보러 가던 평범한 날이었다. 우연히 들어선 거리에서 심상치 않은 건물 옆을 지나치다 걸음을 멈추었다. 얇고 긴 벽돌이 인상적인 육중한 건물이었다. 그리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창문이 없고 굉장히 네모나고 단단해 보였다. 첫인상은 그저 열심히 쌓은 거대한 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디서 나는 뭔가 다름을 느꼈을까? 아직도 확실하진 않으나 아마도 추측하기론 창문이 없는 외관이 다른 건물과 다르게 생경함을 자아냈던 것 같다.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여 고개를 드니 동그란 로고가 보인다. 퀸마마마켓. 적어도 뭔가는 파는 곳이겠지. 그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입구는 건물의 구석에, 건물이 도로와 마주하고 있는 길이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크기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심히 나무 사이의 돌다리를 걸어 들어갔다. 누군가의 정원에 몰래 발을 디딘 것 같아 조심스럽게. 문 앞에 잠시 섰다. 유리 문도 아니고, 나무를 켜서 만든 두꺼운 문짝이라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몇 번이나 다시 고민했다. 문짝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안을 바라보니 계단밖에 안 보인다.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의 건물은 지금 생각해봐도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마마마켓은 도산공원 하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필수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01 하나가 된 편집숍의 편집숍


한때 낯설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집숍은 멀티숍 또는 셀렉트숍이라고도 불리는데, 한 매장 안에 두 개 이상의 브랜드 제품들을 모아놓고 유통하는 방식을 이르는 말이다. 편집숍은 전적으로 상품을 기획하는 MD(Merchandiser)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데, 어떤 물건을 어떻게 진열하고 어떤 방식으로 파는지에 따라 편집숍이 가지는 인지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편집숍은 규모에 따라 MD가 가진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산물일 수도, 철저한 시장분석을 통해 나온 전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퀸마마마켓을 지칭하는 단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프로그램*이 특이하다. 편집숍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라이프스타일? 뭔가를 하고자 한다는 느낌은 있으나 그 정의가 모호하다. 옷을 파는지, 책을 파는지, 식물을 파는지 이름만으론 도저히 알기 힘들다. 공간을 모두 돌아보고야 알게 됐다. 아, 다 팔고 싶다는 말이구나.


그러니까 퀸마마마켓은 편집숍은 편집숍인데, 편집숍들을 모아놓은 편집숍이다. 층마다 다른 가게들이 자리한다. 게다가 다른 편집숍들이 물건을 시기별로 바꾸듯 매해 퀸마마마켓 측에서 정하는 컨셉에 따라 입점해 있는 편집숍들도 바뀌고, 인테리어까지 변한다. 일정 기간의 쉼을 가지고 새로운 물건과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돌아온다. 퀸마마마켓이 여느 편집숍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결국엔 퀸마마마켓도 다른 임대업과 다르지 않다. 좋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골라 입점하게 하는 것만 보통의 건물과 다를 뿐, 백화점의 생태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에겐 다른 수많은 임대 건물들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용도'라는 의미로 쓰는 건축 용어




02 닮은 듯 다른 3개의 공간


건축가에게 임대를 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는 순간, 건축가에겐 지켜야 할 한 가지 규칙이 생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써도 가능한 공간으로 디자인할 것. 그게 무슨 말이냐면, 어떤 가게가 들어와 어떻게 바꿀지 모르니 가장 변화의 여지가 많은 공간으로 만들 것. 즉, 가장 간단한 구조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나 임대를 위한 건물은 천편일률적으로 단순하고 반복된 공간으로 짜인다. 공간을 익히기엔 쉽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지루하고 금세 질려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곳, 퀸마마마켓에서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풀었다. 닮은 듯, 다르게.



1층 + M층



처음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1층의 매장이 먼저 눈에 띄었다. 높은 층고에 복층이 걸려 있다. 퀸마마마켓이 가장 먼저 보여주길 원하는 제품들로 가득 차곤 하는 곳이다. 각종 정원 관리 용품부터 차(tea) 용품들까지, 퀸마마스러운 물건들이 먼저 자리 잡곤 한다. 가장 큰 매장이기도 하고, 퀸마마마켓의 색깔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차(tea) 관련 용품들을 팔고 있어서 카페 역할도 도맡아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M층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복층은 1층과 메인 계단과 별도로 별도의 계단으로 따로 연결되어 있다. 1층과 분리된 매장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같은 매장의 연장선에서 운영되기도 한다. 아예 따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1층과 M층은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이 때때로 분리되거나 합쳐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1층과 M층은 같은 천장을 공유하고 있는데, 천장 계획이 눈에 띈다. 다른 벽면과는 다르게 나무로 마감하고, 일정 간격으로 길쭉한 조명을 심었다. 패턴이 만들어지고, 공간을 조금 더 길어 보이게 만든다.


지금과 다른 레이아웃으로 운영되던 1층의 공간. 



M층에서 2,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우리 주변의 계단실을 잠시 떠올려 보자. 엘리베이터가 망가졌을 때, 어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하는 계단. 그것이 아니라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급하니까 차선책으로 선택하게 되는 비상계단. 내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따로 동떨어져 오로지 필요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걸 들어서자마자 우린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취급받던 계단실을 공간의 내부로 끌어들였다. 따로 동떨어진 계단실 말고, 내부에서 공간을 누리면서 이동할 수 있도록 내부 공간에서 쓰이던 어휘를 그대로 끌어왔다.



퀸마마마켓은 전 층에 걸쳐서 노출 콘크리트 마감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계단도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려 마감했을 뿐 아니라 콘크리트가 주는 단단하고 무거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난간을 꽉 막힌 구로 강판(금속의 일종으로 검은색을 띤다.)으로 마무리했다. 손잡이도 따로 없는 이 무겁고 짙은 색상의 난간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한 느낌도 준다.



2, 3층


2, 3층이야말로 프로그램이 가장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곳이다.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가장 날것의 마감으로 처리되었다. 콘크리트의 벽면이 그대로 남겨졌고, 천장의 보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2, 3층은 처음엔 옷가게였고, 언제는 맥주를 팔았고, 지금은 또 다른 편집샵으로 변했다. 현재 3층은 어른들을 위한 서점이라는 타이틀을 건 PARRK가 들어와 있다.


1층과 4층 사이, 중간에 위치한 두 개층이 원하는 바는 명확하다. 위에 언급한 대로 어느 용도로 사용이 가능할 것. 그리고 이곳, 퀸마마마켓 앞에 위치한 도산공원을 집중적으로 끌어들일 것.


한때 맥주집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현재는 편집샵이 들어와 있다. 가방, 신발, 필기류 등의 여러 가지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작년 말, 3층에 자리 잡은 서점 PARRK는 과거의 매장들을 돌이켜봤을 때 퀸마마마켓이 가진 장점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매장 중 하나다. 어디서든 도산공원이 내뿜는 푸르름이 그대로 전해진다. 책 한 권 사들고 얼른 도산공원에 앉아 커피 한 잔 하고 싶게 만든다.


이전에 퀸마마마켓 3층에 자리하고 있는 서점 PARRK에 대해서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쪽으로.



4층


첫 방문 당시, 엘리베이터를 타 4층을 눌렀다. 커피가 필요했고, 일단 카페인 보충 후 계단실로 걸어내려 오면서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로만 건물을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계단실도 아주 중요한 건축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4층에 도착해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내 입도 떡 벌어졌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의 출현이었다. 그곳은 줄무늬 그림자의 공간. 예상하지 못한 박공지붕을 가진 빛의 카페. 한참을 멍하니 서서 공간을 둘러봤다. 빛이 어떻게 이렇게 강력하게 들어오는 것인지, 박공의 지붕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퀸마마마켓을 설계한 조병수 건축가는 이러한 그림자의 향연을 아마도 예상하고 있었을 테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가 내려앉을 수 있도록 천장을 제외한 모든 면은 막혀 있게 되었고, 카페 부분도 구로 강판과 나무 마감으로 길게 막아버렸다. 줄무늬 그림자의 도화지가 되는 부분이다.


계단실이든, 엘리베이터든 일단 4층으로 올라오는 순간 큰 하나의 공간이 우리를 맞이한다. 정면에 주문을 받는 카페 바리스타의 공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방문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큰 테이블을 놓았다. 공간과 잘 어울리는 깔끔한 배치였다.



이후에나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강렬한 그림자가 공간을 뒤덮을 때 방문하기란 쉽지가 않다. 날씨도, 시간도 모두 맞아야 가능한 일인데 운이 좋았다. 사시사철 언제나 우리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강렬한 스트라이프 무늬의 빛과 그림자가 아니라 사실 압구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다.



1층에 테라스를 가진 카페는 이미 많지만, 이렇게 옥상에 용감하게 테라스를 차려놓은 카페는 드문데 일단 카페는 1층이 아니면 성공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상층부에 테라스를 가지고 있는 건물 자체가 몇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퀸마마마켓의 4층으로 올라와 압구정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게 되었다. 용감한 선택이었다. 바깥에서는 4층에 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아예 알 수가 없는데, 오로지 입소문으로 유명해져 이제는 자리를 잡기조차 쉽지 않다.


위의 사진은 2015년도에 찍은 사진인데, 당시에는 퀸마마마켓의 맞은편에 건물이 없어 압구정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현재는 현대카드의 쿠킹 라이브러리가 지어져서 사진 속의 뷰를 보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03 박스와 박공이 만났을 때


압구정은 잘 정리된 동네라곤 할 수 없다. 각종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앞다투어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것 같이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건물도 많아서, 리모델링을 거듭해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건물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출처 : http://www.bchoarchitects.com/ws/?projects=queen-mama
출처 : http://www.bchoarchitects.com/ws/?projects=queen-mama


그 가운데 퀸마마마켓은 가장 심플하고 묵직하게 자리 잡는 방식을 택했다. 과감하게 창문을 포기하고 무거운 박스를 땅에 하나 툭 올려놓았다. 길게 찢어진 콘크리트 벽돌을 이용해서 마감했다. 무거운 재료였다. 창문은 오로지 테라스와 계단실에만 일부 허용했다. 물건을 파는 가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처럼.

묵직한 박스 위에는 나무로 마감한 박공지붕의 매스*를 하나 올려놓았다. 자칫 밋밋하고 단순하게 끝날 수 있었던 건물을 두 개로 나뉘어 보이도록 약간 어긋나게 만나게 했다. 위에 자리 잡은 카페와 테라스를 가진 공간을 가볍게 띄워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췄다. 이러한 전략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멋 부린 많은 건물들 사이로 창문이 없는 묵직한 건물이 보일 때 나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건물의 큰 형태를 일컫는 말.






글을 쓰다가 다른 건축가들의 생각도 한 번 들어볼까 해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퀸마마마켓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둘 모두 짠 것도 아닌데, 도산공원이라고 답했다. 맞다. 퀸마마마켓은 건축적인 조형미뿐 아니라 위치 선정마저 탁월하다. 압구정의 작은 공원, 도산공원을 앞마당처럼 바라볼 수 있다. 퀸마마마켓은 역으로 도산공원을 알리는 역할도 했음에 분명한데, 나만 해도 서울의 공원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도 퀸마마마켓에 와본 후에야 도산공원에 대해 알게 됐다. 출입할 수 있는 구멍도 작게 딱 하나, 사방으로는 난간과 수풀이 우거져 있어 안이 쉽게 들여다보이지 않는 공원의 특성상 단언컨대 퀸마마마켓이 도산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다.



퀸마마마켓이 도산공원을 바로 앞에 두고, 매 층마다 공원을 공간의 안으로 끌어들여 도산공원과 하나처럼 만들어 낸 것은 사실 태생부터 잘 타고 태어난 덕이 크다. 건축가는 이미 갖춰져 있는 잠재력을 끌어냈을 뿐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뛰어난 프로듀서를 만난 절대음감 영재 정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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