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트 호텔, 인천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설계 수업은 매주 두 번씩 있었는데, 매 수업시간마다 12명 정도 되는 스튜디오 반 사람들은 각자 준비해 온 설계안에 대해 교수님과 일대일 데스크 크리틱을 가졌다. 데스크 크리틱이란 교수님과 나란히 책상에 앉아서 그려온 도면과 아이디어 스케치 등을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보통 각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다르기 때문에 해주시는 조언도 다르고 이끌어주시는 방향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내가 3학년 1학기에 만난 교수님만은 예외였는데, 교수님은 누가 어떤 아이디어와 도면을 가져가든 세 가지 질문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고 멘탈을 흔들어놨다. 그 질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2. 왜?
3.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기는 이렇게 비워 공원을 만들고, 이곳에 건물을 배치하고 동선은 이렇게 잡으려고 합니다."
그려간 도면과 모형을 가지고 계획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나면, 교수님의 첫 번째 질문이 날아온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저는 커뮤니티가 활발히 일어나는 공동주택을 만들고 싶어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첫 번째 질문까지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막연하게라도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었으니까.
"왜?"
당연하게 좋다고 생각했던 방향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받고선 난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커뮤니티는 당연히 좋은 게 아닌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좋잖아? 반찬도 나눠먹고! 그런데 정말 좋은가? 안 좋은 점은 없나?
남에게 마냥 좋다고 들은 것, 이유 없이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던 얕은 생각들은 '왜'라는 질문 앞에서 대개 무너져 내렸다. 내가 완벽히 소화해 낸 나의 생각이 아니면 그 질문에 대해 답하기 쉽지 않았다.
"… 요새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어서, 이웃과 교류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같이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냐는 물음에 나는 다시금 침묵했다. 모두가 그것을 원하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읽었던 단편적인 리서치 자료, 내가 겪었던 작은 경험들, 막연했던 생각들만으로 이게 정말 옳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그대로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교수님과의 데스크 크리틱은 그렇게 맥없이 끝이 나곤 했다.
이제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교수님에겐 그저 내 확신 어린 대답이면 충분했을 수도 있다. 네, 전 이렇게 생각해요.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방향의 설계예요! 그저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더라면, 교수님도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설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딱 맞춘 듯 들어맞는 공간 같은 것은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딱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려고 했던 나에게 교수님이 던지던 세 가지의 질문은 정말 요새 더위처럼 내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교수님은 결국 내 설계의 개념을 물은 것이다. 내가 이 공간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사람들이 내가 설계한 공간에 와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사용하면 좋겠는지에 대한 바람. 그것을 우리는 흔히 컨셉(concept)이라고 부른다.
*표기 상 콘셉트(concept)가 맞지만,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발음대로 적었습니다.
건축이란 것이 설계부터 시공이 끝나기까지의 기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얽혀있는 사람들도 많고 각자 모두 원하고 기대하는 바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컨셉으로 건물이 지어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아름답게 짓고 싶고, 시공자는 어렵지 않게 짓고 싶고, 건축주는 저렴한 비용만 투자해서 큰 수익을 얻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다른 목표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고 함께 그 방향으로 걸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모두가 큰 맘먹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 곳이 있으니, 인천에 자리한 네스트 호텔이 그 주인공이다.
네스트 호텔이 원했던 바는 명확하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었으면 좋겠다. 여느 다른 비즈니스호텔들처럼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떠나는 호텔 말고, 하루 종일 바다의 수평선과 함께 자신의 내면까지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호텔. 바쁘게 치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웅크리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
인천 국제공항과 가까이 자리한 바다 앞에서 네스트 호텔은 다른 여느 호텔들이 수직적이고 어디서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원하는 것과는 상반 되게 수평적으로 낮고 긴 형태의 건물로 계획되었다. 3개의 조금씩 다른 건물의 덩어리(보통 매스라 일컫는다.)들은 켜켜이 쌓여 네스트 호텔을 구성하고 있는데, 똑바로 쌓지 않고 서로 조금씩 어긋나게 쌓은 모양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매스들의 중첩임을 더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바다 앞에서 몸을 낮춘 호텔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른 건물들보다 우리를 편하게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오로지 바다와 수평선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호텔의 방문객들을 쉬게 하겠다는 의지가 건물의 외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컨셉의 시작이다.
조금 더 네스트 호텔의 상자들을 뜯어서 바라보자. 똑같이 생긴 상자들이 어슷하게 쌓여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 개의 상자들은 속 내용이 모두 다르다. 가장 아래에 있는 투명한 유리박스는 호텔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 부분. 이곳에 레스토랑, 카페, 오디토리움 등이 모두 위치한다. 저층부에서 크게 계획되어야 할 공간들을 모두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바다를 향한 식당, 플라츠를 만나게 된다. 깨끗한 유리와 절제된 프레임들이 인상적인데, 무거워보이는 콘크리트 박스들을 가장 가벼운 재질의 유리 박스가 그 무게를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생경함을 자아낸다. 내부에서도 가장 바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테다.
유리 박스 위의 두 콘크리트 박스들은 공용부를 제외했으므로 모두 객실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두 박스는 입면에서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난간부터 다르다. 상층부는 유리 난간으로, 중간층들은 철제 난간으로 계획했다. 창의 방향도, 뚫린 창의 면적도 다르다. 네스트 호텔의 발코니는 모두 네모난 박스를 쿡쿡 눌러 넣은 것처럼 발코니 공간을 마련했는데, 발코니의 방향도 두 박스끼리 다름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직업이 건축가이다 보니, 또 이곳저곳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디자인된 호텔을 자주 찾게 됐다. 사진 찍으러 멀리 갈 때, 아니면 친구들이랑 밤새 수다를 떨고 싶을 때면 어느 호텔이 좋은가 고심해서 검색하고, 골라냈다.
하지만 별이 몇 개 달린 호텔이든 사실 내부 평면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에는 옷을 걸 수 있는 옷장. 반대편에는 화장실. 조금 더 들어가면 벽에 걸린 TV와 반대편에 딱 누워서 TV를 보라고 외치고 있는 침대. TV 아래에 짜여 책상 역할을 하는 수납장. 외부로 통하는 작은 발코니까지.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떠올리고 있는 바로 그 방의 형태가 바로 전형적인 호텔의 평면이다.
어떤 호텔을 가든 그러한 구성의 평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 디자이너의 무관심이라기보다는 공간의 효율부터 따져야 하는 경제성이 그 발단이다. 들어가야 할 TV와 침대, 옷장, 화장실의 면적은 정해져 있는데 평면을 조금이라도 더 압축해서 효율적으로 이들을 욱여넣을 수 있다면, 호텔에는 방이 하나라도 더 생기게 된다. 결국 돈의 문제인 셈이다.
그런 경제 구조 안에 우리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호텔 평면밖엔 보지 못한 것인데, 때로 평면을 조금 다르게 짠 호텔들을 만난다. 네스트 호텔의 홈페이지에서 내부 사진을 보면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하는 평면을 마주했다. TV가 아닌 바다를 바라보는 침대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면 바로 아침의 바다가 보이게 될 터였다.
결국 네스트 호텔은 TV와 침대를 떨어뜨려 놓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은 평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아파트 평면 안에서 소파와 TV가 서로 떨어지기 힘든 것처럼 호텔 평면에서 침대와 TV를 떼어 분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것을 해내는 순간 다른 평면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객실에서 우리는 이제 바다와 더 가까워진다.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난다. TV 대신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침대 대신에 TV 앞에는 직접 객실에 맞춰 제작한 소파가 자리했다. 소파까지 들어올 자리가 있다는 것은 애초에 객실의 기본 넓이가 다른 호텔의 객실보다 넓다는 것을 뜻한다. 색다른 평면을 위해서 면적을 더 투자한 것.
소파가 생기니 객실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달라졌다. 이제 침대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서 웅크리고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침대 위에서 음식을 먹다가 흘릴 걱정도 덜어졌다. 소파에 앉거나 누워 TV를 보았고 주전부리를 먹을 수 있었다. 소파와 함께 제작한 책상에 앉아 잡지를 읽었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갔던 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네스트 호텔의 건물은 긴 막대기 세 개를 뉘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로 길이는 길지만 그 폭은 넓지 않다. 그 폭은 객실을 계획하는 데에서 결정되었다. 객실의 평면이 정해지고, 복도를 만들고, 다시 건너편에 객실을 배치하자 그 길이가 바로 건물의 폭이었다. 건물의 형태가 가장 작은 방들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맞춰 가장 저층부의 로비 너비도 같이 정해졌다. 다른 호텔 로비의 넓이와 비교하면 사실은 약간 좁다고 느낄 정도의 면적이다. 대신 높은 층고와 특이한 천장 구조로 답답함을 해소한다.
로비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리셉션일 텐데, 길쭉한 형태 때문이었을까? 리셉션은 로비의 한쪽 구석으로 몰려 수줍게 자리했다. 오히려 로비의 주인공은 레스토랑인 플라츠가 된다. 쭉 펼쳐진 창밖으로 바다와 산책길이 보인다.
깨끗하게 정리된 건물의 형태를 만들고, 기존과 다르지만 좋은 평면을 짜는 것. 물론 중요하다. 여기까지만 잘 해내도, 건축가는 충분히 박수받고도 남는다. 그런데 네스트 호텔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내가 목격하고만 JOH의 끈질김이다. 한 번 정한 건축적 어휘를 끝까지 데리고 가고 말겠다는 그 의지. 기립박수 감이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고 익숙하게 보이는 것이 마감이다. 이게 타일인지, 벽지인지, 대리석인지가 사용자에겐 제일 먼저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건물에서는 가장 마지막 단계다.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 무슨 의미냐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이어진 설계와 시공이 막바지에 이르러 이제 모두가 피곤해진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감 공사 때 언제나 실수가 많이 나고, 타협이 쉽게 이루어진다. 손사래를 치며 쉽게 쉽게 가자고, 그렇게 모두가 지치고 만다.
그런데 여기, 네스트 호텔을 한 번 보자. 위에서 언급했던 세 개의 매스가 어슷하게 쌓인 그 모양. 그 모양이 바닥 패턴에서도 발견된다. 큰 돌을 건물의 덩어리가 생긴 모양대로 잘라서 깔았다. 그래서 산책길을 걸을 때에도 여전히 한 패턴 안에서 사람들은 움직이게 된다. 외부 공간마저도 자연스레 네스트 호텔의 연장선이 된다.
그리고 한 군데 더. 내부 로비에서도 타일이 같은 비례를 유지한다. 긴 비례의 타일을 다시 겹쳐서 똑같은 패턴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끈질긴 설계자의 의도다.
네스트 호텔은 공간의 곳곳에서 컨셉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책하고, 먹고, 쉬라고 공간이 열심히 사람들의 등을 떠민다. 호텔의 공간들이 모두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구성되었다. 바다라는 무대를 바라보면서 먹으라고 저층부의 로비가, 일어나자마자 바다를 보며 일어나 쉬라고 객실의 평면이, 패턴이 이어지는 바다 옆 산책길이 모두 이곳을 우리들의 아지트로 만든다.
호텔을 이용함에 있어서 조식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던 사람도 호텔에 와서는 조식을 먹는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호텔 객실에서 레스토랑으로 걸어 나온다. 어슬렁거리면서 접시에 음식을 옮겨 담는다. 이때 공간을 즐기는 시간이 다른 때와 달라 특이한데, 일어나자마자 비몽사몽 간에도 조식을 먹는 레스토랑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쉬이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긴다. 그래서 많은 호텔들이 객실보다 힘을 주는 곳이 조식을 먹는 식당이다. 이곳이 집이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까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기려는 듯 네스트 호텔의 레스토랑인 플라츠는 마치 연극 무대 같이 다양한 높이를 내부에서 즐길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플라츠의 사진은 흑백 필름으로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