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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08. 2017

푸른 컨테이너의 숲

커먼그라운드

00 우리 주위의 컨테이너


우리에게 컨테이너는 낯설지 않다.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많은 곳에서 컨테이너를 이미 접했다. 바닷가 근처 부두에 쌓여 있는 수많은 컨테이너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도로에서도 컨테이너를 싣고 달리는 트럭들을 때때로 만난다. 시골에 내려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농사를 지으시던 곳에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들어진 작은 창고 겸 숙소가 있었는데, 비좁긴 했지만 잠시 머물기는 좋은 장소로서 기능해 주었다. 중학교 때에는 컨테이너 하나가 매점이 되어, 쉬는 시간이면 컨테이너 안에 있는 매점 아줌마에게 달려가 열심히 빵을 달라 외쳤다. 고등학교 때에는 방과 후 활동으로 하는 밴드 연습실이 컨테이너였던 기억도 남아 있다.


본래 컨테이너는 짐을 옮기기 위해 제작되었다. 도로 위 트럭에 실을 수 있는 최대의 크기로, 배에 적재하기 용이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머물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옮기고 쌓기 쉬운 것이 먼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쉽게 옮기고 설치할 수 있는 컨테이너 속으로 곧잘 들어가서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곤 했는데, 그렇게 발전된 양식을 컨테이너 건축이라고 부른다.




01 건축 재료로서의 컨테이너


나는 건대입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성수역 쪽으로 매일 같이 지하철을 타곤 했는데, 어느 순간 창문 밖으로 건대와 성수 사이에 푸른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가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저 어떤 물건을 적재해 놓느라고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컨테이너의 색이 푸른색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뭘 하느라고 컨테이너를 쌓아두었나. 그러다가 4월 초, 동네 곳곳에 붙은 포스터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커먼그라운드'라는 이름을 가진 일종의 쇼핑몰이 오픈한다고 알리기 위한 홍보 포스터였다. 포스터에는 푸른 컨테이너를 형상한 일러스트들이 그려져 있었다.



건축 설계 일을 하면서 건축주와의 미팅이나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할 때면 건축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건축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공간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하고 있는 건축가의 손을 잡고 꼭 건물은 콘크리트로 지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건물을 나무로 짓든, 콘크리트로 짓든, 철골로 짓든 각각의 장단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구조를 택할 것인지는 상황에 따른 건축가의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구조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곳, 커먼 그라운드가 컨테이너를 건축의 재료로써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건대 로데오 거리의 끝자락. 이곳은 주황색의 택시가 빼곡히 채워져 있던 택시 회사의 땅이었다. 커먼그라운드를 계획하던 코오롱은 건대역과 성수역 사이, 약 5000㎡ 면적을 가진 이 땅을 8년 간 임대하기로 결정한다. 8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이곳에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철거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는 것은 적당한 해법이 아니다.


콘크리트 건물은 짓는 데에 오래 걸린다. 부술 때에는 많은 폐기물도 나온다.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고, 지을 때든 부술 때든 많은 먼지와 소음이 생겨난다. 긴 시간을 바라본다면 콘크리트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겠지만, 한정적인 기간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조금 더 빠르게 지어야 하고, 쉽게 철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 바라볼 때에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인 얼반테이너는 아주 영리한 꾀를 낸 셈이다.



컨테이너 건축의 시작은 이미 있는 재료를 활용하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그것이 재활용이든, 새 컨테이너를 개조하는 것이든 처음부터 구조를 세우는 것보다 싸고 간편하게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제품으로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되었다. 현장에서는 여러 컨테이너를 연결하는 작업만 진행한다. 이렇게 공장에서 이미 만들어오는 공법을 건축에서는 프리패브리케이션Prefabricaion이라 한다.



커먼그라운드는 컨테이너가 200개가 넘게 사용되는 공사였는데, 컨테이너 건축이 보통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큰 규모다. 공장에서 이미 제작해 오는 컨테이너들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시간은 다른 공법에 비해 월등히 빨랐다. 그렇게 커먼그라운드는 6개월 만에 950평에 달하는 팝업스토어를 선보인다. 아마도 이후에 8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흐르고 나서 없어지게 되는 상황이 닥쳐도, 커먼그라운드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빠르게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선 소리 소문 없이 다른 장소에 옮겨져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컨테이너 건축이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오히려 더 많다. 컨테이너는 애초에 건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컨테이너 자체로 쌓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사람들이 공간으로 이용하기 위해 일부를 뚫고 잇는 등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기둥이 필요하게 된다. 단열과 환기의 문제도 크다. 일반 건물에서 쓰이는 단열재를 그대로 붙일 수 없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환기를 하기 위한 배관이나 전기 공사가 이루어지려면 온전한 컨테이너 모양을 유지할 수 없다. 일부가 뚫리고, 배관이 그 사이를 지나가야만 한다. 건축가는 공간의 짜임보다 이 컨테이너들이 건물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설비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썼을 테다.




02 마당을 만드는 컨테이너


건축가는 이것을 광장이라고 표현했고, 누군가는 중정이라고 부를 것이고, 나는 마당이라 칭하겠다. 컨테이너로 둘러싸인 이 공간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 땅을 모두 채우면 더 많은 가게가 들어갔을 텐데, 그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커먼그라운드의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는 마당으로 비워두었다.



비워진 마당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애초에 이 공간을 계획하며 나온 아이디어들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을 난 확신 한다. 때로는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하고,  맥주 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사진을 찍는다. 주말이면 꽤 자주 커먼그라운드에서는 이벤트들이 벌어지는데, 그 성격이 모두 다 다르고 다양한 업체들이 주도한다. 맥주 업체에서 판을 벌이기도 하고, 한쪽에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게임장이 설치되기도 한다. 자동차 회사에서 신제품을 가지고와 시승식을 열고, 힙합 가수들이 찾아와 공연을 하는 일은 이제 꽤나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마당에 서면 3면이 모두 쌓인 푸른 컨테이너들이다. 외부의 마당에는 언제나 한쪽에 푸드트럭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컨테이너가 가지는 이동성과 잘 어울리는 식당의 형태가 아닐 수 없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가장 큰 입구로 들어서면, 컨테이너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마당을 만나게 된다. 외부에서 컨테이너들의 바깥 면으로 둘러싸인 마당을 경험했다면, 이번엔 내부로 열린 컨테이너들로 둘러싸인 마당이다.



들어오자 만나는 공간은 컨테이너 두 개, 그러니까 여기서는 두 개층의 높이를 가지는 층고를 가진다. 뻥 뚫린 공간은 또 다른 내부의 마당으로서, 이곳도 외부와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운다.




컨테이너 건축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재료가 일정한 크기를 가졌다는 점. 콘크리트나 철골 등의 다른 구조들이 유연한 공간 구성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컨테이너라는 제품을 사용한 공간들은 어쩔 수 없이 같은 크기로 공간이 나누어진다. 한계라고 말할 수 있는 컨테이너 건축의 특징을 커먼그라운드에서는 재밌는 장점으로 잘 풀어냈다. 컨테이너 한 칸, 한 칸마다 다른 가게들이 들어섰다. 같은 크기와 형태의 공 안에서 가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제품을 보여주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물론 모든 가게들이 이렇게 컨테이너 한 칸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위 사진에서 보이는 곳이 A 영역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편에 위치한 B 영역 안에서는 꽤 자유로운 평면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구조 보강이 필요해져 추가적인 기둥들이 들어섰지만 열린 공간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커먼 그라운드는 크게 두 개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편의상 메인 출입구가 있는 건물을 A 영역, 그 건너편의 건물을 B 영역이라 부르겠다.




03 거리를 조성하는 컨테이너


많은 가게들이 밀집된 곳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공간을 떠올리게 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에게 거리는 멀어졌고, 백화점은 가까워졌다. 백화점 안에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들은 원형을 이루고 있고 우리는 수직적인 이동을 계속하면서 최대한 많은 가게들을 지나치도록 유도된다. 다른 곳으로 외도를 할 순 없다. 지하 1층과 최상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려면 반드시 그 사이 층들의 가게들을 거쳐야만 한다. 가장 효율적이지만, 굉장히 강압적인 동선이다. 그나마 우리는 요새 지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쇼핑몰들을 통해서 다시 거리의 재현을 발견한다. 걸으며 많은 가게들을 지나쳤던 옛 경험이 다시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커먼그라운드가 계획될 때 벤치마킹했던 장소는 런던의 코벤트가든이었다. 거리를 걸으면서 많은 상점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들과 광장을 둘러싼 음식점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도심 속 공간. 커먼그라운드 곳곳에는 코벤트가든이 가지고 있는 몇몇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광장을 둘러싼 음식점들만은 마당과 같은 높이에 있는 대신에 3층으로 올려졌다.



식당가는 3층 높이로 올려진 또 다른 거리다. 바닥에 깔린 나무 데크를 걸으며 타이 음식점을 지나고, 중식당을 지나고, 카페를 지나고, 맥주집마저 지나친다. 간단한 요기부터 식사와 디저트, 맥주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세심하게 입점되어 있다.



나는 보통 메인 출입구가 있는 A 영역으로 들어와 구경을 하며 3층까지 올라오고, 3층에 걸려 있는 다리를 통해 B 영역으로 옮겨간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다리는 사실 커먼그라운드가 처음 오픈되었을 당시만 해도 설치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A 영역을 한 번 모두 둘러본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건너편의 B 영역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굳이 B 영역까지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추후 다리가 설치되자 많은 사람들이 3층의 다리를 건너서 반대편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비록 처음부터 계획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문제점을 목격한 뒤 발 빠른 대처가 이루어졌다.



다리를 건너 B 영역으로 건너면 다시 거리는 이어진다. 나무 데크 위로 다른 메뉴를 가진 식당들이 입점해 있다. 건물은 두 개 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같은 거리의 연장이다.




커먼그라운드는 그 자체로 큰 모험이었다. 아마도 코오롱이 이 업계에 웬만큼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러한 위험부담을 굳이 지고 가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이미 다른 쇼핑몰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선호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금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커먼그라운드는 말하자면 큰 도박이었고, 보란 듯이 잭팟이 터진 것.


국내에는 처음 선보여지는 형태와 기능의 건축물이었고, 재료였고, 공간이었는데 처음엔 낯선 듯하더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망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던 것이 죽어 있던 로데오 거리를 살리더니, 이제는 중국의 관광버스가 앞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쏟아낸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까지 파란 컨테이너 박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린다. 명실공히 건대 근처의 랜드마크가 됐다.



건축가로서 새로운 시도가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고 있는 것이,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공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데, 새로운 시도에 대한 위험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것은 겁 많은 우리 건축가들이 아닌가. 다시 한번 어떤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뒤돌아 보게 된다.





벽 한 면을 꽉 채우는 다양한 메뉴를 가진 식당이라면, 그 모든 음식들을 모두 맛있게 내놓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된다. 선택의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맛에 대한 신뢰성은 떨어진다. 반면 진정한 맛집에는 메뉴가 많지 않다. 한두 가지 메뉴로 승부한다. 선택과 집중. 단출한 메뉴판을 보면 안심된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커먼그라운드를 설계한 설계 사무소인 얼반테이너는 메뉴가 딱 한 가지인 건축계의 맛집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컨테이너를 활용한 건축물이었던 쿤스트 할레부터 컨테이너 건축의 대중화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커먼 그라운드를 거쳐서 이제는 해외에도 컨테이너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한 가지 종류의 건축을 많이 한다는 것이 때로 건축가들에겐 지겹고 지루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으로 쌓인 노하우는 무시 못할 무기가 된다. 컨테이너 건축을 통해 얼반테이너는 다른 사무소들이 갖지 못한 필살기를 가진 설계 사무소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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