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과 입면을 닮은 사진
나는 사진을 혼자서 시작하지 않았다. 동아리에 들어가 여러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며 사진을 배웠다. 그래서 똑같은 장소로 출사를 다녀와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들과 비교할 기회가 많았다. 아무래도 혼자서 사진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나의 시선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같이 경험할 기회가 흔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들이 구분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 똑같은 장소에 다녀왔는데,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 때면 열에 아홉은 정확했다.
이를테면 사진의 성격은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누군가의 사진은 채도가 강하고 여러 색이 함께 섞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누군가의 사진은 빛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 마치 빛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계절의 느낌을 강하게 담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인물 사진만 고집하며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많이 겪다 보니 사진에 이미 이름이 쓰여있는 듯했다.
혹자는 사진이 예술이냐고 묻는다. 사진은 기록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들이 사진을 예술이라 쉬이 정의 내리지 못하는 까닭은 사진의 신속성과 정확성에 있을 것이다. 사진은 분명 카메라의 발명 이전의 예술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사진에 다른 특징들이 있고 그것들이 모여 그 사람만의 개성과 철학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기록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제야 예술의 영역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다.
나의 사진은 어떤 느낌일지 오히려 내 사진은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 사진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은 점점 더 쉬워졌는데, 내 사진은 특징을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인스타그램에서 후배 한 명이 내 사진 같다며 사진 하나를 올렸다. 아, 위에서 똑바로 아래를 내려다본 사진이었다.
건축설계를 더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내 사진은 건축을 닮아갔다. 위에서 바라본 평면이나 옆에서 본 입면과 같은 사진들이 늘어났다. 높은 곳이 있으면 올라가서 아래를 찍어봐야 직성이 풀렸고, 사진이 렌즈에 의한 왜곡은 후보정 과정에서 쭉쭉 직각으로 맞춰야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사진 안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다. 건축을 완성하는 게 그 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사람이듯 사진도 사람이 없으면 주인공이 없는 배경처럼 느껴졌다. 사진에도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내가 찍는 사진은 건축적인 사진이 아닐까 하고 사진을 시작한 지 7년 차인 지금 처음으로 정의 내려본다. 그리고 건축적 사진의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