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한강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나는 운이 좋게도 큰 강이 가로지르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특히나 나는 어렸을 적부터 한강을 지척에 둔 집에서 계속해서 살았는데, 최근까지는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그저 한강이란 어디에나 있는 놀이터와 비슷한 정도의 중요도를 가지고 있었다. 심심하면 나가서 놀 수 있는 곳 정도.
그러다 작년에 UAUS*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주제가 서울이었다. 서울이란 무엇인지, 어떤 도시인지 고작 몇 미터 안 되는 공간에서 표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팀원들과의 미팅에서 듣는 서울의 느낌은 나와는 달랐다. 나에게 서울이란 잠들지 않는 익숙한 아파트의 도시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서울은 낯선 곳이었고, 양면의 특성을 가진 곳이었고, 따뜻한 곳이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팀원들의 생각이 공통적으로 모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한강이었다.
*UAUS는 서울 내에 있는 건축대학연합으로, 1년에 한 번 건축 파빌리온을 짓는 행사를 주최하며 그 외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서울의 모든 풍경은 강과 함께 흐른다. 다양한 풍경으로 이루어진 서울엔 고층 빌딩과 고궁, 서울을 둘러싼 산과 숲,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 화려한 조명, 수많은 자동차의 불빛이 공존한다. 어느 도시의 강보다도 넓고 긴 한강은 이러한 다채로운 풍경들을 모두 담아내는 공간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아파트, 빼곡히 늘어선 가로등, 강변도로의 자동차까지, 빠르게 움직이는 서울은 시시각각 한강에 투영된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한강의 수면 위에서 흐드러진 서울의 풍경은 그 자체로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반사와 왜곡을 통해 풍경을 담아내는 한강을 DDP에서 재현하고자 한다. DDP에 흐르는 한강 또한 반사와 왜곡을 통해 DDP를 담아내고, 이를 통해 낯선 시각적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한강을 먼발치에서 바라 볼 필요가 없다. DDP에 입혀진 한강 속으로 들어가 풍경의 일부가 되어 경험하고 즐길 수 있다.
─ 2015 UAUS 한양대학교 팀 <Seoul Flows In You>에서
UAUS 이후 한강은 조금 더 나에게 소중한 곳이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이 있는 곳이라 그 가치를 몰라봤던 셈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한강을 조금 더 자주 찾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일부러 뚝섬유원지에 내려서 한강을 가로질러 집까지 걸어왔다.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도시의 풍경은 나에게 더욱 다채롭게 다가왔다.
한강이 특수한 점은 그 너비가 세계의 다른 도시를 살펴보아도 압도적으로 넓다는 점이다. 너비가 넓다는 점은 서울처럼 과한 밀도를 가진 도시를 강력하게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공기의 순환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제공한다. 특히 요새는 한강공원 조성사업이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지면서 시민들은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한강을 즐길 수 있어졌는데, 주말 낮에는 자전거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그리고 얼마 전 가을밤에 찾았던 한강에는 텐트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특히 이번 여름은 유독 뜨거웠어서, 사람들은 가을 바람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텐트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한강 앞 잔디밭 위에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바람을 맞았다. 사실 그날 밤엔 텐트가 없어도 좋았다. 돗자리 하나만 있어도, 텐트 못지 않게 좋았다.
한강은 서울에 있어 가장 강력한 공원이다. 서울 내에 한강만큼 탁 트인 공간은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은 그것을 익히 알고 있다. 뉴욕에 허드슨 강이 있더라도, 한강은 허드슨 강보다는 센트럴 파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강은 우리로 하여금 야외에서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친구들과 같은 방향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고, 컵라면 하나도 운치 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한강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한강의 가치는 아파트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보다 그 안에서 즐기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