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Oct 14. 2016

밤하늘에 피는 꽃

2016 서울 세계 불꽃축제


01


이상하게도 나는 불꽃놀이 출사와 인연이 없었다. 언제나 내 한 몸 챙기기에 급급해하면서 불꽃놀이를 지켜봤다. 미국에서 독립기념일 불꽃축제를 봤을 때에도, 런던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 터지는 불꽃을 보았을 때에도, 여의도에서 불꽃놀이를 봤을 때에도 나는 카메라 없이 눈으로 찍어서 기억 속에 저장했다. 사실 항상 카메라는 있었으나 삼각대까지 챙기는 것에 실패해서 그랬다.


4년 만에 다시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풍환이는 의욕에 차서, 여러 삼각대 중에 내 삼각대를 가장 앞자리에 세워주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불꽃을 찍을 수 있는 추천 장소는 여러 블로그들을 보면 자세히 정리가 되어 있어, 그중 하나로 골랐다. 풍환이가 고른 장소는 여의도가 아닌 이촌. 여의도에서 바로 한강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공원이다.



02


용산역에서 내려 한강 쪽으로 걸어갈 때만 해도, 아주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은 그 근처에서 사 먹으면 되고, 이제 저녁까지 돗자리에 누워 영화나 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난관은 한강에 들어서며 알게 되었다. 이촌 한강공원은 공사 중이었다.


파란 펜스가 사람 키보다 훨씬 더 높게 쳐져 있어서, 기존 한강 공원의 레벨에서는 불꽃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불꽃은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한강과 여의도 쪽을 온전히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부지런한 사진 아저씨들은 삼각대를 들고 강변북로 쪽 언덕을 올라가 이미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작은 사진 아저씨들이었으나, 그 끝은 모든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들고, 등산을 하듯 언덕을 올랐다. 지난밤 내렸던 비 때문에 풀로 뒤덮인 언덕은 매우 미끄러웠고, 연신 사람들은 미끄러져서 매우 위험했지만 다행히 내 주변에 큰 사고는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공사로 인한 돗자리 위치 변경


한화에서 보낸 스태프들과 경찰들은 강변북로로 나가는 사람들을 막기에 급급했는데, 결국 강변북로를 분리대 하나 건너에 두고 돗자리를 핀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짓이었다. 큰 사고 나서 강변북로에서 차가 굴러 넘어왔다면, 사람들은 우르르 차 아래에 깔리는 일은 피할 수 없었을 테다. 나는 강변북로에 텐트를 치려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죽음과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언덕 위까지 올라와도 한강 공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워서, 내 뒤의 사진 아저씨들이 연신 나무를 누가 가서 베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모의하는 것을 3번은 넘게 들었다. 이 상태로 몇 해만 연속으로 공사 중이라면, 누군가 도끼 들고 나무를 벨 것 같았다.



03


불꽃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펴고 본격적인 촬영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블로그를 뒤져보았다. 조리개 8 전후로 맞추고, 시간은 4초에서 10초 사이를 추천했다. 빛의 양이 시시각각 큰 폭으로 변하니, 카메라가 스스로 노출을 맞추는 것은 결국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여서, M모드로 맞추고 MF로 포커스를 무한대로 돌렸다.


아, 바람이여


바로 전날 비가 와서, 날씨는 매우 맑았기 때문에 사진 찍기 좋다고 생각했다. 가시율이 높아서 아주 깨끗한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불꽃 출사를 처음 나온 나의 불찰이었다. 불꽃을 찍으면, 바람도 같이 찍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불꽃은 꼭 선풍기 앞에서 머리 말리는 나의 모습처럼 보였다.



바람 때문에 올라가는 불꽃과 터지는 불꽃의 위치가 다르다


몇 번의 연습 끝에 그래도 불꽃다운 불꽃을 찍을 수는 있었다. 불꽃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으나, 운에 맡겨보기로 했다.


바람이 잠깐 안 불었던 순간인듯


불꽃은 결국 100장의 사진보다는 1번 터지는 걸 가까이서 보는 것이 더 강력하다. 사람을 압도하는 스케일은 이미지로는 전달되기 힘들다. 그 말은 즉, 나도 찍는 것보다 눈으로 보면서 감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타임이 끝나고, 결국 내가 손으로 눌러도 노출값을 조절할 수도 없고, 불꽃을 예상할 수도 없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작전을 바꿨다. 어차피 운에 맡길 것. 4초씩 6초 간격으로 인터벌 촬영으로 돌렸다. 니콘에는 기본적으로 있는 기능이었다. 4초보다 더 오래 찍으면, 불꽃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 크게 보여 조금 짧게 찍는 것이 그날은 더 유리했다.


아래는 모두 인터벌 촬영의 결과물. 놓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삼각대를 고정시켜놓으니, 화각을 다르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내가 예상한 프레임 밖으로 높이 치솟는 불꽃들이 있었는데, 일부가 잘려나갔다. 내 앞에서 사진 찍으시던 분은 그때그때 불꽃을 조준하듯 삼각대의 볼헤드 느슨하게 풀고 움직이며 찍으시던데, 셔터스피드를 손이 견딜 수 있는지 모르겠다. 흔들릴 것 같았다.



04


위의 사진들이 상투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불꽃의 사진들이라면, 이번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베스트 컷은 아래의 3장이다. 



작게 흩어지는 불꽃들이 마음에 든다. 크게 빵빵 터지는 불꽃들은 실제로 보기 좋고, 작은 불꽃들은 사진에 담기에 좋다. 마치 도화지에 조심스레 붓으로 작게 그린 꽃잎처럼 여백의 미를 가지고 있다.



05


나이를 들면서 우리가 쉬이 잃어버리는 것은 숙취 회복 속도나 팽팽한 피부가 아니라, 결국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즐거움을 함께 데리고 오는데, 우리는 호기심과 함께 즐거움조차 멀리 떠나보낸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곳은 싫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걱정되어 집 자체를 떠나지 않고, 불꽃놀이는 평생 한 번 보면 된다고 위안한다. 또는 영상으로, 사진으로 보면 되는 것 아니냐며 되묻는다.


나의 답을 말하자면, 나는 시각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지만 시각적 결과물은 '진짜' 앞에서 모두 우르르 무너진다고 답하고 싶다. 그러니까 역시 초상화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좋고, 도면보다는 건물 안에 들어가서 공간을 느끼는 것이 좋고, 불꽃놀이 영상이나 사진을 백날 보는 것보다는 언제 한 번 밖에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구경하는 것이 좋다. 장담한다. 이미 뻔히 알고 있는 시나리오로 불꽃은 터지고(처음엔 하나씩, 나중엔 우르르) 여느 불꽃이 다른 불꽃과 다르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불꽃놀이를 보면 어느 순간 박수를 치고 함성을 내지르게 된다.


매년 꼭 나가서 보라고까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갈 에너지가 충전되면, 이미 한강을 나가서 불꽃놀이를 구경한 지 시간이 몇 년이나 흘렀다면, 한 번 구경 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날씨는 좋고,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더 좋으니까.




불꽃을 찍는 것은 삼각대와 릴리즈를 모두 갖춰도 여전히 어렵다. 노출은 시시각각 변하고, 어느 정도의 빛이 쏟아질지 나는 예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가장 예쁘게 불꽃이 연달아 터지는 하이라이트 시간에는, 너무 빛이 많아 핵폭탄이 된다.



가장 화려한 순간을 제대로 담지 못하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