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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ug 27. 2018

대청마루에 앉아

SSS의 HHH를 찾아서_ 소설재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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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옥에 묵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한옥에 대해서 강한 집착도 없었고, 욕심도 없었다. 우리는 다만 꽃무늬 벽지가 발려 있는 숙박업소에서는 도저히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여러 콘도가 아니라면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굉장히, 굉장히 많았다.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고다와 에어비앤비를 싹 다 뒤지고 있는데, 노숀이 꽤 눈에 띄는 숙소를 찾아왔다. 겉만 한옥인 것이 아니라, 내부도 꽤 신경을 쓰며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릉원과 황리단길도 걸어서 갈만 했다. 방마다 화장실도 따로 있다. 여기다. 예매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울산, 경주, 대구에 걸친 세 도시의 숙소를 모두 노숀이가 잡아 왔으니 프로검색러가 아닌가.




1


한옥을 한옥답게 하는 것이 뭘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기와도 아니고, 대들보도 아니라고 대답할 테다. 한옥을 구축하는 중요한 구조 부재는 맞지만, 한옥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시간을 가져다주는 것은 역시 마루와 마당이다. 마루와 마당이 있어야만 그제야 한옥은 한옥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마루와 마당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 경계를 최대한 흐리게 하기 위한 한옥의 장치인데, 건축학에서는 전이 공간(transfer space)이라 일컫곤 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외부의 골목에서 한옥 내부의 방까지 들어오기까지 마당을 거쳐야 하고, 다시 신발을 벗고 마루를 지나야만 한다. 딱히 쓰임이 무엇이라고 단정 짓긴 어려운 공간인 마당과 마루는 그렇기 때문에 더 다양한 활동을 가능케한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특히 각 객실의 프라이버시를 지킴과 동시에 강렬한 햇빛까지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 발이 꽤 마음에 들었다. 김밥을 말 때뿐 아니라, 공간에서 발은 꽤 재밌는 모습과 용도로 쓰이곤 한다.




2


경주는 더웠다. 한여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뜨거워 오전 일정을 모두 마치자 이미 우리는 지쳐 시원함을 찾아 좀비처럼 걷고 있었다. 우리 숙소 가서 좀 쉬다 다시 나올래? 그래. 그러자. 그러면 맥주만 좀 사가서 마실까? 좋다. 좋지.


by 빔

대청마루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봤다. 빔이 물었다.


"행복이 뭘까?"


우린 차례로 대답했다.


"맥주?"

"바람?"

"햇빛?"

"시간?"






3


소설재의 객실에는 침대가 없다. 한옥이라면, 역시 침대가 없어야 하겠지. 침대가 더 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요를 깔고 자는 것이 더 편해서, 사실 침대가 없는 객실인 게 조금 반갑기도 했다.


by 노숀


여행자로서 잠깐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의 방은 이불이 다시 개어질 일은 없었지만, 침대가 없다는 것은 그만한 공간을 다르게 쓸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기도 하다. 이불은 개어 놓을 수 있으니까. 두 번의 밤을 보낼 동안 이불을 한 번도 개어 놓지 않고 그 위에서 자고, 수다를 떨고, 사진을 같이 보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렸다. 





친구 빔과 친구 노숀과 함께 울산, 경주, 대구를 여행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공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라, 힙하고 핫하고 헤리티지한 공간을 찾아 즐기고 싶었어요. 우리의 여행은 그래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어졌습니다. 'sss의 hhh를 찾아서' 시리즈의 글들은 그렇기 때문에 건축을 읽는 글이 아니라 공간을 기억하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편히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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