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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Feb 12. 2019

떡볶이

어떤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

1


급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급식이 정말 맛있었던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급식을 일찍 먹고 싶어서 수업을 마치는 종이 치자마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달려가던 기억은 선연하나, 그것이 배가 고프거나 얼른 밥을 입에 넣고 싶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난 아까운 줄 모르고 급식을 반 넘게 버렸던 어린 중학생 여자애였다.


마지막 교시를 마치고 나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친구들과 교문을 나섰다. 딴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하교하던 날들은 많지 않았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으니 배가 고파 하루를 멀다 하고 편의점에 주저앉아 컵라면을 먹었고, 그게 아니면 자연스레 낡은 문을 열고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즉석 떡볶이 집이었다.



4명이서 가면 떡볶이 2, 3인분 정도만 시키는 것이 옳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삶은 계란과 김말이와 만두와 같은 토핑들을 추가한다. 라면 사리는 둘. 때로는 쫄면도 좋지만, 역시 라면사리가 빠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재료를 가득 담은 냄비가 나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푸른 불꽃이 냄비 아래로 보이면, 빨간 양념이 풀어진 국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라면 사리를 깊이 국물 속으로 담갔다가 라면 사리가 채 익기도 전에 면이 풀어지기만 하면 앞접시로 옮겨 맛을 본다. 면은 완전히 익기 전부터 먹어야 맛있다.



그렇다고 내가 떡을 좋아하는 건 또 아니어서, 어묵과 김말이와 사리를 먹으며 마지막 코스를 기다린다. 즉석 떡볶이를 먹으러 오는 이유의 8할은 이 때문이다. 볶음밥을 먹어야 하니까.


미처 다 먹지 못한 떡들을 각자의 앞접시에 옮겨 담고 나면, 주인 할머니 또는 아줌마 혹은 아저씨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와 재빠른 손놀림으로 밥과 참기름과 김가루와 옥수수 왕창, 치즈 왕창 냄비 안에 털어 넣었다. 별 재료도 아닌 것들이 떡볶이 국물과 합쳐서 그런 맛을 내다니. 아직도 놀랍기 그지없다.


아껴뒀던 삶은 계란을 깨서 밥에 비벼먹고, 친구들과 함께 냄비에 눌어붙은 볶음밥 누룽지들을 아직도 뜨거운 손잡이를 잡은 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있을 때보다 일어서니 배부름이 더 심하게 생생하게 느껴져, 버스를 타고 왔던 그 길을 걷기로 한다. 아, 소화시켜야겠어. 모두 그렇게 말하면서.




2


남는 건 사진뿐이라지만, 특정 음악이 내가 지나왔던 어떤 순간으로 날 되돌려 놓는 경험들을 부정할 순 없다. 음악뿐 아니다. 후각은 더욱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내 감각 속으로 훅 들어와 빛의 빠르기로 잊었던 어떤 기억을 끄집어낸다.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기억들. 후각받고, 미각까지 더한 음식들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그리운 음식들을 먹으러 먼길을 마다한다. 꼭 비싼 음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면 된다.


나에겐 떡볶이가 그런 음식이다. 고르자면, 컵에 담겨 나오는 떡볶이 말고 냄비에 끓여 먹어야 하는 즉석 떡볶이면 좋겠다. 중학교를 다니던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내 취향은 그리 달라진 점이 없다. 다만 이제는 떡볶이를 먹는 장소와 시간이 달라져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을 모아 떡볶이 가게를 가기도 하고, 저녁때 술집에 들어가 떡볶이에 후레시 하나, 카스 하나 달라고 외치게 되었다는 것.



특히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나의 여행 친구를 돌아보며 간절하게 묻는다. 혹시 오늘 나랑 떡볶이 먹을래? 내가 여행에서 다시 나의 땅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실감하는 나만의 절차.




3


작년, 독립출판으로 시작했던 한 권의 책이 정식 출판에 이어 베스트셀러 자리까지 올라가 오래도록 머물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제목만 듣고 모두가 예상했다는 그 책의 성공을 회고하며 나의 편집자님은 말했다. 누가 떡볶이를 안 좋아해요? 그 책은 무조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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