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선아키 May 09. 2019

멈춰있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애프터 저크 오프 @을지로

0 낯설게 하기


건축학과 5학년, 졸업을 앞둔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졸업 설계 프로젝트는 인생에 딱 한 번. 그러니까 재밌는 것을 하라고.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라고. 그래서 했다, 재밌고 없는 거. 내 졸업 설계 프로젝트는 아쿠아리움이었다.


내 생각의 전개는 다음과 같았다.


- 사람들이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 신기해서.

- 왜 아쿠아리움은 우리에게 신기할까? 

: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르니까.

- 우리가 사는 곳과 무엇이 다른가? 

: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주변을 채우는 것은 공기가 아닌 물인 것이 다르다.

- 아쿠아리움이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 사람이 물속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아쿠아리움은 간접적으로 그 경험을 하게 해 준다.

- 바닷속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뭘까? 

: 땅 위에 억지로 바다를 옮겨오지 말고, 직접 바닷속에 아쿠아리움을 만들어 주자.

-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 신기함을 주는 것.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 곧, 최대한의 낯섦을 구현하는 것.


학생으로서 마지막 프로젝트였고, 가장 오래 작업했던 졸업 설계 프로젝트의 목표는 결국 딱 하나였다. 사람들을 낯설게 하면 성공. 신기하지 않으면 실패. 


시작은 아쿠아리움이었으나, 결론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사람들이 유희를 위해서 찾는 공간에서 낯섦은 중요하다. 끊임없이 사람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그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때때로 그것은 아주 옛날의 공간과 새로운 성격을 합쳐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공간의 성격을 다르게 바꿔 새롭게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옥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목욕탕을 카페로 바꿔 사용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방법은 여러 가지. 가능성은 열려 있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를 고민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보자마자 '와' 하지?




1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을지로에 새로 생긴 카페 혹은 바, 애프터 저크 오프는 성공이었다. 민진이의 소개로 알게 된 애프터 저크 오프 사진을 보자마자 '와' 했다. 고민도 없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소는 을지로였다. 을지로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말 그대로 호시탐탐 노렸다.



'와'했던 지점은 딱 하나. 이곳은 아쿠아리움인가, 바인가. 분명 사람들은 앉아서 술을 마시는데 물고기가 돌아다닌다. 옛 다방처럼 큰 어항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애프터 저크 오프의 바 전체가 모두 물이다.



새롭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매해 아이폰이 새로 출시되어도, 갤럭시가 새로운 모델을 선보여도 모든 것이 바뀌진 않는다. 단 한 두 가지. 딱 그 정도만 바뀌어도 우리는 그것을 새롭다 한다. 


애프터 저크 오프에서 사용한 방법은 치환. 이미 있는 것을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꾸고 대체했다. 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바. 바 디자인은 그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나무를 얇게 켜서 제작하는지, 두거운 철판을 거칠게 붙여 마감하는지. 아니면 바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생겼는지, 아니면 공간에 딱 들어맞게 딱딱하고 경직된 형태를 하고 있는지.



애프터 저크 오프의 바는 고정되지 않았다. 수조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담긴 물은 계속 출렁이며, 그 안에서 사는 물고기는 헤엄친다. 멈춰있지 않은 것들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다. 아니, 사실 애프터 저크 오프에 머무는 내내 수조밖에 바라보지 않았다. 아쿠아리움에서 술을 마시면 이런 기분일까?



바 유리 위로 와인 잔과 안주들이 내어 나왔다. 계속되는 시각적 자극으로 와인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닮은 와인 잔 뒤로 출렁이는 물결과 빛에 자꾸만 집중한다. 그것만으로 알 수 있다. 아, 여기에 몰빵 했네, 다 걸었네, 여기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어떻게 이렇게 대범할 수 있었을까? 때때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보이는 대담함에 놀란다. 아니, 사실 자주 놀란다. 건축은 느리고 보수적이라 따라가지 못하는 면이 분명 있다.




2 공간을 이루는 빛, 공간을 채우는 향


애프터 저크 오프가 이토록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비단 바로 쓰이는 어항뿐 아니다. 어항이 그토록 낯설게 보이도록 뒤에서 거드는 것은 빛. 빛의 색깔이다.



수조를 통해 새어 나오는 푸른빛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공간은 붉은빛을 내뿜는다. 낮에 방문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밤엔 꽤 어둡다. 메뉴 정도만 겨우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조도를 가졌다. 다만 푸른빛이 수조를 가로질러 강하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어둡다는 걸 느끼긴 어렵다.



강한 색조의 사진을 얻기 좋은 곳. 아래 위로 서로 다른 색의 빛들이 강렬하고, 지느러미를 팔랑이며 푸른빛을 반사하며 돌아다니는 물고기와 붉은빛 안에서 움직이며 소리 내는 사람들. 애프터 저크 오프는 여러 빛들과 존재들이 경계 안에서 만나 버린 곳이었다.



물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동양적인 어떤 세계를 극대화시키고 싶어서일까? 애프터 저크 오프에서는 지속적으로 향을 피우는 모양이어서, 아마 인센스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불편할 수 있다. 시각적인 강렬함과 더불어 후각적으로도 강한 자극이 몰려왔다.


그 덕분인지 애프터 저크 오프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지속해서 사람들을 자극한다. 물고기로 때리고, 붉고 푸른빛으로 때리고, 향으로 때린다. 몇 방 맞고 나니 잊기가 쉽지 않다. 낯섦을 연속해서 펀치로 맞는 것과 같은 공간이다.




3 그 이후의 시간들


다시 졸업 설계 프로젝트로 돌아가서, 아쿠아리움 설계를 하면서 다른 방향에서도 아쿠아리움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아쿠아리움은 사실 바다에 사는 생명들에게 아주 잔인한 공간이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잔혹한 곳이다. 몇십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헤엄치며 바다를 내 집으로 삼는 상어와 고래를 잡아다 해봤자 십 미터 가량 되는 공간에 욱여넣는다. 헤엄을 치고 있지 않냐고? 뱅글뱅글 돌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지능이 매우 높은 고래들은 곧잘 폐사한다. 자주 찾았었던 롯데 아쿠아리움에 있었던 백색의 고래 3마리 중 한 마리는 이상 행동을 보이다 폐사했다.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종 중 하나였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느냐 아니냐는 더 이상 논의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들은 이미 본인들이 갇혀 구경거리가 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를 하고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 애프터 저크 오프가 보여주는 시각적인 강렬함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조만간 걱정이 됐다. 이 물고기들, 수조 안을 활발히 움직이고 있지 않다. 구석에 그들끼리 모여 머문다. 건강하지 않아 보였다. 이 친구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산소를 공급해주고, 물을 갈아줘도 그게 소용이 있을까? 이런 붉고 푸른빛 아래에서, 사람들의 쿵쿵 거리는 발소리 사이에서. 걱정이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