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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May 09. 2019

썩은 사과 몇 개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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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친구들과 만나 술을 한두 잔씩 하다가, 독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각자가 꼽은 작년 최고의 책을 말해 보자. 그러니까 2017년 최고의 책. 그 자리에서 나는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꼽았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삶에 깊은 통찰을 주고자 하는 책도 아니고, 알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이 숨어 있는 교양서적도 아니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자기 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자기 계발서가 되면 가장 안 되는 책이겠다.) 다만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꼽았던 이유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꼈던 당시 나의 상황에서 느꼈던 통쾌함 때문. 


이 소설 속 통쾌함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온다.




1


개인적으로 여러 가치 사이에서 번뇌하고 고심하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고민하며 결정을 못 내리고 정에 휩쓸리는 소설 속 주인공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가 여러 결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여러 가치판단과 감정노동에 휩쓸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일 테다. 일상이 그러한데 쉬고 싶어 찾는 소설 속에서까지 굳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소설 속에서만큼은 속 시원한 사이다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한 면에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취향 저격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릴리는 흔들리지 않는 간단하고 명료한 가치관을 내세운다. 이 세상엔 생명이 너무나 많고, 그중 썩은 사과 몇 개를 조금 더 일찍 신이 데려간다 한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고. 오히려 이 사회에 선량한 피해자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그리고 그 가치관을 직접 실행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만의 도덕적 당위성에 따라 움직이는 주인공의 거침없는 행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통쾌함과 동시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그런 면이 우리들에게 소설 속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지속적으로 매력적인 이유다.




2


기존 문학 작품에서 범인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지능이 우수하고 신체 능력이 월등한 엘리트 남성이라면 범인으로서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곤 했다. 게다가 외모가 매력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에 반해 여성은 대개 억울한 피해자 혹은 목격자의 지위에 머물렀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캐릭터 구성이 매력적인 이유는 캐릭터들의 지위와 권력의 전복에 있다. 소설의 전개 내내 번뇌하고 흔들리며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남성이고, 목적에 따라 잔인하게 움직이는 캐릭터는 여성이다. 특히 릴리는 깡마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신체적인 능력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명을 해치운다. 당연시했던 관념이 깨어질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3


미국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벼운 책이다. 어려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회사 상사에게 괴롭힘을 일주일 동안 잔뜩 받고 난 후의 주말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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