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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n 30. 2019

Law, Like Love

<아리랑>, 헌법재판소




공간은 사람을 닮게 되어있다. 그곳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모습과 냄새는 달라진다. 달라지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16년. 돈이 크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매일 16년간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며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맥주들을 기울였다고.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공간에서 알려준다. 벽에 붙어있는 여러 기사들과 포스터들이, 공간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희귀한 앨범들이, 손때가 잔뜩 묻은 의자와 테이블들이 이 공간에서 있었던 시간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준다. 그게 감격스러워서, 나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이건 일부러 만들 수 없는 거야. 나 혼자 할 수 없는 거야.





<헌법재판소>라는 제목의 앨범은 여러 단상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게 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담을 허문다는 것은 또 어떤 현상인지, 앨범 제목을 또 영어로 'Law, Like Love' 짓다니. 3집이라며 나에게 건네준 한 권의 책 속에 책갈피를 끼워 넣듯 CD 한 장이 들어 있다. 우린 3집부터 역순으로 2집과 1집까지 모두 들으며 근대 가요에 맞춰 고개를 흔들고 박자를 탔다. 딕션이 좋고, 딜리버리가 좋다며 웃었다. 멋있어. 진짜 멋있어. 몇 번이고 말했다.


3집은 데려가야겠어서, 그 자리에서 돈을 내고 한 권인지 한 장인지 모를 앨범을 받아 들었다. "잘 듣고, 잘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곧 철거될 헌법재판소의 담장이 보였다. 비가 온다더니, 비는 오지 않고 가로등의 불빛과 시원한 바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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