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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05. 2020

향기를 만지는 시간

엄마는 리스를 만드는 시간 덕분에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작업실 앞에는 작은 꽃집이 하나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작지만, 일단 꽃집의 존재를 알고 나면 항상 문을 열었나 살피게 되는 그런 꽃집. 전시를 보러 가며 꽃을 살 일이 있어 한 번 방문한 이후로 그곳에서는 꽃다발과 화분뿐 아니라 여러 클래스들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때, 꽃집 문을 열고 리스 만드는 수업도 하시는지 여쭤봤다.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리스는 겨울 내내 벽에 걸어두기 좋다. 보기에도 좋고, 향도 오래가니까. 그리고 클래스는 원하는 시간에 미리 예약만 하면 재료들도 모두 준비해주신다고 하여, 크리스마스가 지난 주말에 두 명이서 오겠다고 덜컥 예약을 걸었다. 엄마랑 와서 같이 해야지. 엄마는 좋아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내가 처음 리스를 만들어 본 것은 첫 회사를 다닐 때였다. 소장님들을 포함해 다섯 명이 전부인 작은 신생 회사였고, 그 해의 종무식은 업무 대신 리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재료를 직접 회사로 가져와 회의실에서 모두 모여 리스를 하나씩 만들었다. 재료를 다듬어 철사로 묶는 것뿐인데 두 시간 남짓했던 시간은 푸른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신기하게도 같은 재료를 사용했는데도 사람마다 리스의 완성된 모습이 모두 다 달랐던 것을 나는 퍽 신기해했었다.


리스를 만들어 본 그때의 경험이 나에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 엄마와 이번 겨울에는 리스를 같이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엄마의 것은 집에 걸어두고, 내가 만든 것은 작업실에 걸어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실 앞 꽃집은 내가 예약한 시간에 클래스를 듣는 사람은 나와 엄마뿐이었다. 공간이 작으니, 한 두 사람씩밖에 받지 못한다고 했다.



준비된 재료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시면서, 기본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 놓는 일부터 배웠다. 큰 가지는 사용하지 않고, 가지 끝의 여린 잎만 사용한다. 적당한 수의 가지와 잎들을 모아 철사로 묶어 놓는다. 기본 재료부터 열매와 꽃이 있는 재료들까지 각기 다른 겨울나무들을 다듬고 정리한다.



플로리스트가 미리 준비해둔 동그란 가지에 작업해 두었던 잎 뭉치들을 하나씩 붙여나간다. 철사로 당겨 묶는다. 이때, 리스가 마를 것을 생각해 더 꽉 묶어놔야 한다. 마르면 줄기들이 얇아져 헐거워 떨어질 수 있다.


빈 구석들을 모두 채우고, 중간중간에는 유칼립투스 잎과 열매들도 섞는다. 열심히 묶다가 고개를 드니, 이게 웬걸. 엄마의 속도가 나보다 더 빠르다. 플로리스트는 보통 어머님들이 더 잘 만들곤 한다고 했다. 난 왜 당연히 내가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단지 주말의 두 시간을 할애했을 뿐인데, 엄마는 신이 나서 리스를 꼭 안고 집에 오자마자 벽에 걸었다. 리스를 찍은 사진이 카톡 프로필 사진이 되었고, 엄마는 리스를 만드는 시간 덕분에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과도 함께 와서 리스를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데에 관심 있는 친구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집으로 돌아와 리스 만드는 수업 중간중간 엄마를 찍은 사진을 다시 열어보니, 표정이 정말 좋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작업에 집중하면서도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더 자주 식물을 만지러 가야지. 다음엔 엄마와 내 동생 민아와 다른 친구들도 모두 함께였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리스는 작업실에 걸어두었고, 작업실로 들어설 때마다 느낀다. 겨울나무의 향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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