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들을 불러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난 힘이 들 땐 혼자 있기를 원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TV 프로그램을 보거나 잔다. 에너지 충전은 혼자 있을 때 된다. 내 문제는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게 문득 다가와 "넌 나랑 안 맞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난 바로 물을 것이다. "뭐가? 뭐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속상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흥미로워하는 편에 가깝다.
퇴근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주말에는 누구와 어디를 갈지는 보통 정해져 있고, 여행 계획은 미리 세우는 편이다. 즉흥적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 조금은 꺼려져서, 고치고 싶어 하고 있다. 서프라이즈를 좋아한 적은 없다.
다른 사람의 서운한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이 어렵다.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화를 맞는다거나, 서운하다는 사람에게 알겠다고만 해서 말을 제대로 안 듣고 있다는 오해를 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타인의 격한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요새는 암기 과목처럼 외우고 있는데, 아무래도 미봉책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내 MBTI 결과는 ISTJ다.
MBTI의 의미는 나 하나에 있지 않다. 혼자 결과를 읽을 때에는 5분 남짓한 재미로 끝났던 것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확장되자 5분은커녕 5일을 넘어 몇 달째 지속되고 있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내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MBTI가 뭐냐고 묻기 시작하자 끝도 없이 에피소드들이 쏟아지고, 서로를 알아가기 좋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같은 MBTI끼리 모아놓고 보니 그들끼리의 공통점이 꽤 선명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의 어떤 점을 좋아하고 있는지, 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괜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인간관계에는 사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주변은 ENFP들로 점철되어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MBTI를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ENFP라고 답한다. 소름 돋는 일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들을 좋아해서 모으고 있다고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사람을 좋아하고, 다양한 일들에 흥미를 보이고 즐거워하는 이들을 내가 좋아한다. INFP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겁다. 타인에게 밝고 유쾌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사람들이다. ENTP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티키타카가 된다고 생각한다. ENFJ들이 가지는 선하고 옳은 가치관이 좋다. 누구에게 소개를 시켜줘도 안심인 사람들이다. 나와 같은 ISTJ들을 찾아놓고 보니 내가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대체로 조금 차가운가 싶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고 답답한 구석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자세히 알게 되는 순간들은 언제나 소중하고 흥미롭다. 그들이 나와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하면서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래도 좋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다르다고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