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조각들

<사진>

by 선아키



날씨가 좋거나 혹은 안 좋은 날에, 새롭거나 혹은 익숙한 장소에서, 항상 함께하는 사람들과 또는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좋은 날에 좋은 곳에 가면,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사진은 더 많이 찍게 됐다. 어딘가에 올리려는 목적보다도, 언젠가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사진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정말 신기하게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진이 불러오는 기억의 뭉치에 비해 사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자체는 정말 찰나이지 않은가. 1/30초에서 1/1000초에 달하는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한 것뿐인데도 그 장면을 사진을 통해 다시 목격하면 그때의 기억이 줄줄이 따라온다. 어디를 걷다가, 왜 멈춰 서게 되었는지. 어떤 장면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까지. 우리는 그렇게 순간의 조각들을 마주하는 즉시 당시로 되돌아간다. 함께 했던 그때의 얼굴들을 떠올려 낸다.




어렸을 때에는 두꺼운 가족 앨범을 열어서 나와 동생의 어린 모습을 자주 봤다. 목욕탕에서, 바닷가와 동물원에서, 때로는 집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대학교 때엔 친구들과 일주일 간 다녀온 며칠 간의 여행 사진을 고르고 골라 스케치북에 하나하나 풀칠해서 붙이고 네임펜으로 코멘트를 써넣기도 했다. 자는 동안 짓궂게 얼굴에 낙서한 사진들이 많았다. 사진은 역시 뽑아서 봐야 좋다고, 그 이후에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사진들을 골라 인화해 앨범에 끼우고는 책장 어딘가에 꽂아 뒀다. 함께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선물하기도 했다.


예전보다 요즘은 구글 포토의 도움으로 조금 더 쉽게 옛 사진들을 꺼내 본다. 앨범을 뒤적일 필요도 없고, 폴더 안의 폴더 안의 폴더로 더블 클릭해 들어갈 필요도 없어졌다. 구글 포토에서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검색하고, 그때 갔던 그 장소의 이름을 써넣으면 바로 보여준다. 덕분에 사진을 사람들과 더 많이, 쉽게 공유할 수 있어졌다. 고맙게도 사람들은 나보다 내가 찍은 순간들을 더 많이 좋아해 주곤 했다.




오늘 아침은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았다.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예뻐 보여 사진을 찍었다. 유독 그 카페에선 커피가 내려지길 기다리며 사진을 남기곤 했다. 커피 사진을 찍은 적도 있고, 공간을 찍은 적도 있었다. 요 며칠 동안은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마스크를 낀 채로 올여름의 인증샷도 몇 장 남겼다. 별것 아닌 이 사진들은 나중에 우연히 또 발견되어 이때를 기억하게 하겠지.





사진에 대한 글을 준비하다, 故전몽각 선생의 <윤미의 집>을 읽었다. 아니, 보았다고 해야 할까. 오랜 시간을 뛰어넘은 흑백 사진들은 색이 없음에도 따뜻했고,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정겨웠다. 사진 속 인물들은 나의 가족이 아닐뿐더러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도 불구하고 뭉클하다. 그것은 아마도 뷰파인더를 통해 그들의 순간을 담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서 그럴 테다.


오늘의 글은 <윤미의 집> 속에 실려 있는 정은정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줄이려 한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펼쳐질 때 그것은 오늘,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사진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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