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면 애기는 훌쩍 뛰어 내 무릎 위로 올라온다. 아빠 다리를 한 무릎 위에서 꾸물꾸물 몸을 움직이더니 마음에 드는 각도를 잡고 자리를 잡는다. 두 손을 꼬아 숨기고, 내가 "애기~" 하고 부를 때면 꽤 귀찮은 듯이 나를 올려다본다. 전자레인지에 10초 돌린 찹쌀떡처럼 다리 위에 눌어붙어 있어서 다리가 저릴 때까지 난 움직일 수가 없다. 뜨끈뜨끈하다.
반면, 호옹이는 인간들이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으면 호기심에 테이블 위로 뛰어오른다. 제대로 착지 위치를 확인하고 뛰어야 할 텐데, 성격이 급한 호옹이는 본인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미끄러지거나 테이블 위의 음식을 밟고 지나간다. 봉골레의 올리브 오일을 밟고 나서 발을 탈탈 터는 바람에 오일을 마구 흩뿌린 적도 있고, 동그란 꼬리(호옹이는 꼬리가 꺾여있다.)에 초고추장을 잔뜩 묻히고 돌아다닌 적도 있다.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산만하기 그지없다.
호옹이가 오기 전, 애기가 나 홀로 고양이일 시절에는 고양이가 물건을 넘어뜨리는 일은 인터넷 짤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애기는 도통 무언가를 치고 지나가거나 어디론가 무리해서 올라서는 일이 없었고, 큰 소리에도 쉽게 놀라는 예민함과 조심스러움을 가진 신중한 고양이다. 우다다 뛰어다니거나 하는 일 없이 도도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만 목격된다.
반면, 호옹이는 도대체 고양이인지 말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달린다. 다그닥 다그닥. 고양이는 소리 없이 걷는 것 아니었나? 호옹이는 걸을 때도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온갖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런 적 없는 것처럼 군다. 세상 무해한 눈빛을 하고 우릴 바라본다. 애초에 조심스러움 같은 것은 타고나질 않았다. 자꾸 에어컨 배관을 잡고 에어컨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우리는 냉매를 지키고자 에어컨 배관에 캣타워 용 노끈도 꼼꼼히 감아줬다. 다행히 우리 에어컨 배관은 아직까지 안전하다. 벽지는 꽤 스크래치가 많이 났다.
고양이는 조금만 짜증이 나면 집을 나간다는 둥, 고양이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둥 고양이의 까칠한 성격에 대한 루머들이 많은데, 이런 이야기들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애기를 만나보면 알 수 있다. 애기는 빔에게 무한히 착한 고양이다. 빔 외의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고 까칠하게 굴지만 빔의 품 안에서만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얌전하다. 빔이 계속해서 내려놓아도 끊임없이 빔의 무릎 위에 올라오고자 점프한다. 빔 바보. 애기는 빔밖에 모른다.
반면, 작업실의 접대를 도맡고 있는 호옹이는 낯을 도대체 잠깐이라도 가리는 것인지 의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와도 엉덩이를 두드려주면 가만히 서서 손길을 반기는 것은 물론, 속도 없이 초면인 사람에게 가서 고개를 들이민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자동차 엔진 소리처럼 그르렁그러렁 골골대는 것은 물론이라서, 작업실에 찾아온 손님들이 고양이가 골골 거리는 것을 처음 본다며 감동하고 간다. 찾아가는 감동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성격이 아주 다른 두 고양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고양이를 고양이라고만 생각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동물의 한 종류로만 바라보고 판단했던 때. 그런데 애기와 호옹이가 내 곁에 오고 나서는, 고양이로만 설명될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해서 쌓여간다. 애기는 애기고, 호옹이는 호옹이다. 사람이 제각기 다르듯이 동물들도 그런 것을 결국 겪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고양이란 도대체 뭘까? 두 마리의 고양이와 지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세 마리여도, 네 마리여도 모르지 않을까. 우리가 100명의 인간을 만나도 100명의 인간이 모두 다 다를 것이라고 경험으로 알게 된 것처럼. 다만 나에게 와 준 고양이를 잠깐이라도 꼭 안을 수 있는 순간이 있어 꽤 위로가 되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