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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16. 2021

엄마가 꼽은 2020년의 단어

시발 비용

엄마한테 화나는 일이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울었고, 그 후엔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엄마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고, 잊지 않았다. 엄마가 화를 내는 방식은 나와 아주 비슷하다. 엄마는 이 일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나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다. 이왕이면 최대한 멀리 훌쩍 떠나고 싶었다. 엄마도 매일 같이 겪는 일상에게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엄마, 그러면 민아 오면 우리 여행 가자. 돈 펑펑 쓰고 오자!"

"좋아."

"엄마, 이렇게 화날 때 쓰는 비용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뭐라고 부르는데?"

"시발 비용. 욕 나올 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쓴다고, 회사원들이 쓰는 말이야."


나는 엄마에게 퍽 상스러운 용어를 가르쳐줬고, 엄마는 내 예상보다 그 단어를 좋아하게 됐다. 심지어 그다음 날엔 그때 내가 가르쳐 준 말이 뭐였냐고, 다시 가르쳐달라고 카톡이 왔다. 



이젠 엄마는 시발 비용이라는 단어를 잊지도 않는다. 엄마가 자꾸 [씨발 비용]이라고 발음해서, 너무 상스러우니 [시발 비용]이라고 발음하곤 한다고 정정해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 4명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속 엄마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근심이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바라보고, 겨울임에도 수영장에 들어가고, 오름 위에서 바람을 거침없이 맞는 엄마의 모습이 나는 꽤 제주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이번 여행을 시발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걸 듣더니 내 동생 민아는 나보고 자꾸 엄마한테 이상한 말 가르쳐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도 화가 날 때가 있고, 화를 풀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한 것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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