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칼로 잘라 단면을 내보이면

<달까지 가자>, 장류진

by 선아키
800x0



어쩌면 누구나 쓸 법한 글이라고 평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가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낯선 것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달콤한 상상으로 그려봤던 미래이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사두고 잊고 있던 비트코인으로 몇 억을 벌었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아니면 최근 너도 나도 주식을 하며 친구와 지인들이 원금을 크게 불렸다는 소문을 건너 건너 들었을 때. 그럴 때 우리 모두 상상하지 않나? 아, 내 돈도 그렇게 몇 배로 불어나면 좋을 텐데.


월급날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 들고 직장 동료들과 나누는 잠깐의 허황된 상상들을, 그게 아니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부자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반농담 반진담의 질문들을 장류진 작가는 치밀하게 이더리움이라는 롤러코스터로 지어 올렸다. 누군가는 과거의 어느 순간을 다시 현재로 불러와 소설을 쓸 테고, 또 누군가는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겠지만, 현실을 칼로 잘라 그 단면을 가장 선명하게 우리 눈앞에 내보일 수 있는 작가는 단언컨대 장류진이 아닐 리 없다.




오랜만에 소설을 종이책으로 읽었는데, 처음 쥐었을 때 예상보다 두꺼워서 깜짝 놀랐다. 보통의 장편 소설 책보다 두꺼워서, 읽는 데에 오래 걸리려나 싶었다. 요새는 특히 한 권의 책을 뚝딱 읽어내기가 힘들어서, 가방 속에 오래 들고 다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어느새 나는 B03(비공채 세 명을 일컫는 단톡 방 명칭)의 세 명과 같은 열차를 타고 있다. 그들 뒷좌석에 앉아 차가운 땀이 나는 손으로 손잡이를 꼭 쥐고 응원한다. 소설 속 불길하게 들리는 묘사 하나하나에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소설 속 내비게이션이 잘못된 경로로 들어섰다고 하면 그것이 복선일까 봐 눈을 질끈 감는다. 안돼. 성공해야 해. 대박 나야 해. 그리고 나도 어느 순간 외치는 것이다. 달까지 가자고.




이 소설이 그저 일확천금 대박으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였다면, 또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래프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면 <달까지 가자>는 지금과 같은 힘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공 세 명이 바라는 것은 그저 화장실과 거실을 구분할 수 있는 5cm 높이의 턱이었고, 매달 쫓듯 찾아오는 학자금 대출 상환이었고, 내일이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기에 공감대를 불러온다. 또한 2017년의 이더리움 차트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을 잃지 않는다.


때로 내적 박수를 치며 밑줄을 긋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 사이에 머물러 있는 뜻들은 말 그대로 맥락에 숨어있었다. 멋진 미사여구와 문장들을 찾아서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밑줄을 긋자고 치면, 밑줄로 책이 도배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구구절절, 이 소설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의 편견과 편협한 잣대에 얽매이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