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퇴사를 했다.
어제는 회사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짐은 미리 옮겨 놓았다. 사직서도 이미 작성해서 넘겨 두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나올 땐 마치 여느 퇴근길 같았다. 6시가 넘자 사람들은 나에게 와 말했다. "시오나, 얼른 퇴사해요."
퇴사가 처음도 아니고, 또 다들 한 번씩은 겪는 일이니까 유난 떨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송별회는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퇴사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지만, 나는 슬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제 이 사람들을 매일 보게 되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동료들은 나에게 고맙게도 꽃도 주고, 선물도 줬다. 축하한다고 말해주었고, 꼭 떠나야 하냐고 묻기도 해 줬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퇴사 과정에서 대표는 회사의 장점이 무엇이냐 물었는데, 그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장점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회사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다. (2021년 6월 기준) 나는 이 회사에 있었던 3년 반 동안 사실 내가 또라이인 것인가 5번 이상 되돌아봤다. 왜냐면 주변에 또라이가 없으면 본인이 또라이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나는 반쯤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라이 총량의 법칙) 그리고 나는 또라이까진 아니더라도 역시 다루기 힘든 직원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퇴사 통보는 직원들에게 먼저 이루어졌다. 언젠가 퇴사를 하게 된다면 꼭 서로에게 먼저 말해주자고 했던 어떤 날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자고 불러내 말하고,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불러내 말하고, 담배 피우러 가는 동료를 따라가 말하고. 나의 퇴사 이유에 대하여 사람들은 물었고, 나는 답했고, 모두들 응원한다 말해주었다.
그다음 날엔 출근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대표를 불러냈다. 회의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나는 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저 퇴사하려고요." 그리고 나는 그다음에 나올 말을 알고 있었고, 나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언제요?"
대표는 2주를 더 일해달라고 말했고, 나도 2주에서 3주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합의는 쉽게 이루어졌다. 퇴사 통보는 실상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를 붙잡지도, 원망하지도,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무덤덤하고 건조한 대화였다. 대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지인들에겐 카톡으로 뜬금없이 나의 퇴사 사실에 대하여 전했다. 아참, 나 퇴사해. 코로나 시대에 모두를 만나서 소식을 전하기엔 기약이 없으니까. 아직 말 못 한 사람들도 많다. 퇴사는 오로지 나와 나의 가족과 나와 함께 일할 파트너들에게만 주요한 일이므로 꼭 모두에게 전해야 하나 싶긴 한데, 그래도 기회가 닿는 대로 여러 사람에게 전하려 한다. 근황 업데이트 겸, 서로의 안부를 물을 겸.
이제 선릉을 떠나 을지로 쪽으로 출근을 한다. 점심 때면 회사 목걸이를 걸고 담배 피우는 직장인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던 동네를 떠나서, 빠레트 위로 인쇄물들을 가득 올린 지게차들이 골목을 활보하는 동네로. 주변에 평양냉면집이 많고, 사무실에는 고양이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잔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