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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ug 23. 2021

마감은 과연 영혼을 갈아넣고 피를 말려야 했는가

<마감>

마감을 떠올리면, 대학교 때 설계실과 복도의 풍경이 떠오른다. 마감 풍경이란 처참한 것이었다. 설계실 안에는 모형을 만드느라 인쇄한 도면 쪼가리들과 잘리고 남은 우드락이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복도에는 라꾸라꾸 침대를 펴놓고 쪽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설계실 내부와 복도엔 알싸한 접착제 냄새가 났다. 환기도 되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아 아침이 온 줄도 모르는 지하 2층, 오전 9시 즈음이었다.


친구들은 새집이  머리와 반쯤은 감긴 눈으로 좀비처럼 복도를 서성거렸다. 설계 수업은 오후 1시에 시작이었고, 수업마다 발표가 있었다. 여기저기 본드가 묻은 티셔츠를 입고 뛰어다니는 친구들이 있으면  모습을 보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발표 1번이군.


발표 1번은 모두가 꺼리는 순서였다. 발표가 뒷 순서가 되면, 작업 시간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발표하는 몇 시간 동안 작업을 더 한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텐데도 첫 번째 순서를 꺼리는 것은 아마 마음의 문제였을 것이다. 매를 먼저 맞는 것이 낫다지만, 남이 매 맞는 사이에 어떻게든 방패를 만들고 싶어서.




졸업을 해도 마감은 이어졌다. 아마 파도가 치듯 마감이 찾아오는 것은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 이 직업의 문제였을 것이다. 결과물을 내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고, 발표 준비를 하는 것과 같은 일이 필요하다.


회사에서의 마감은 학생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 마감이 다가오면 직원인 나는 결과물을 줄이기 위해 눈치를 봤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나는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다. 대표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려고 했다. 혹여나 마감이 닥치고 나서 마음이 바뀌면, 그것은 그의 마음이 아니라 내 몇 날 며칠이 휘청이는 일이었다. 예정된 계획을 무너뜨리는 변덕에 나는 화가 났다.


마감을 치고 나서는 몇 번이고 뒤를 되돌아봤다. 몇 주 동안 야근을 한 적도 있었고, 밤을 꼴딱 새워서 제출한 적도 있다. 마감을 못한 적은 없었다. 일손이 필요하면 다른 팀에서라도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까. 마감은 결국 해냈지만, 일정이 틀어진 적은 셀 수 없었다. 일정은 왜 틀어져야만 했을까? 그것은 마감을 치고 나서 계속 나에게 남은 의문이었다.




회사를 나오고, 다시금 나에게 다른 의미의 마감이 생겼다. 내 이름과 얼굴을 걸고 하는 미팅이 생겼고,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었다. 학생 때처럼 내 이름을 새기는 일이었다.


마감이 언제인지 알게 되면, 스케줄을 짜고 계획을 세우는 데에 공을 들인다. 최대한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려고 한다. 작은 디테일에 욕심을 부리기보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일정을 맞추는 것을 우선시한다. 일을 벌이는 것보다, 일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마감은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달리는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잠은 부족했고, 집중력은 떨어졌다. 새벽이 되면 취한 듯 몽롱해졌다. 결국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마감을 치고 나면, 우리는 더욱 친밀해졌고 작업물은 소중해져서 성취감을 얻었다. 과연 그래야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마감이 다른 의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앞으로 내가 해 봐야 할 일이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 돛단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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