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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Aug 09. 2021

또 다른 나의 세계, 책

<책>

어떤 책을 좋아하나요?

저는 재밌는 책이요.



재미라는 건 너무나도 주관적인 감정이기에 조금더 구체적으로 나의 '재미'를 풀어본다면, 내게 재미는 '내가 겪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한 번도 겪지 못한 감정, 감각, 기분을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해리포터와 하루키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하지만 유한하다. 보통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사실 좀비라는 게 깜찍 고양이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에 노출되는 좀비들이 워낙 잔인하고 징그럽게 그려지니 우리는 그런 좀비밖에 상상하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이 동력을 얻으려면, 닫혀 있던 문을 열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해리포터는 내게 마법세계로 가는 또 다른 문을 아주 제대로 열어준 존재였다. 


나의 어린시절 방학을 보냈던 호그와트와 그 모든 경험을 나누었던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 나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해리포터처럼 또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주는 책도 있는반면, 또다른 감각을 일깨우는 책도 있다. 


바로 하루키다. 하루키 월드. 그가 만들어 낸 세계는 기묘하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하루키의 머릿속을 거치면 이 세상에 없는 기묘한 감각들로 재탄생한다. 겪어봤을 것 같지만 겪어보지 못한 감각들. 추상적이고 실체없는 말인 것 같지만 읽다보면 그 감각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가 빚어낸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의 세계에 들어가면 곧바로 수긍하게 된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거였지.




활자로 알게 된 우울의 깊이


해리포터와 하루키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선물하는 책이 있는반면, 감정의 깊이를 증폭시켜주는 책들도 있다. 지독히 현실적인, 그러나 내가 겪지 못했던 그런 기분들이 피부로 와닿을 때, 나는 또 다시 책의 재미를 느낀다.


얼마 전 추천받은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는데, 책의 흡입력이 엄청났다. 밑줄까지 죽죽 그어가며 신나게 책을 읽었다. 책을 그리 빨리 읽는 편이 아닌데, 그 책은 사흘만에 모조리 읽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붑은 그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앞부분의 내용이 너무 자조적이고 우울해서 읽으면서 그 기분에 동화되는 것 같았다고.


신기했다. 나는 정확히 그 점 때문에 이 책이 좋았거든. 점철된 우울과 자조들은 내가 쉽게 볼 수 있는 감정들이 아니었으니까. 책의 재미는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재밌는 책이었다.


성인이 된 후 가장 재밌게 읽었던 '인간실격'도 그런 종류의 책이었다.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간 그의 문학은 우울 그 자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이 이리도 우울할 수 있는 존재였나. 우울함이라는 건 이런 감정이었구나. 태어나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활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우울이 재미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과 기분을 느꼈다는 점에선, '인간실격'도 제법 재미있는 독서였다.




책을 읽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재밌어서' 아닐까.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한정적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도 기분도 경험도 유한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순간, 내가 겪지 못했던 무한한 감정과 감각들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나는 활자 속을 유영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곳과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 감각들, 경험들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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