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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Aug 23. 2021

고맙게도 멱살을 잡아 주네

<마감>

 마감이라는 있어 보이는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아마 대학교 때 학기를 마칠 시기가 다가와서였을 것이다. 과 특성상 반 학기나 한 학기마다 마감을 해야만 했는데, 마감을 일주일 정도 앞둔 때면 몇몇 동기들과 나는 설계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고 씻으며 모형이나 이미지, 설명 패널을 만들어냈다. 나는 작업 내내 이 모든 것들을 얼른 끝내버리고 싶으면서도 나의 발표 차례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했다. 괴로운 마음으로 보낸 기간이었기 때문에 마감을 하고 나면 삼일 정도는 내리 잠만 자야지, 하는 상상이 아니었으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과제의 마감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마감이 결정될 즈음에는 초조한 마음과 동시에 슬그머니 안도하는 마음도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백지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공간을 만들어 보세요, 처럼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보면 무엇이 최선인지, 과연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막막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선택 장애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끝도 없이 미루는 성격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완결성의 정도를 떠나 마감의 존재는 그런 막막함 속에서 어떤 모양에건 결과물을 내어 놓을 수밖에 없도록 나의 멱살을 잡아끌고 가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감이 다가오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모두의 신경이 예민해지고,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지고, 이게 최선인가? 라는 머리 아픈 질문을 빈도 높게 던진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가면 내용은 둘째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에 급급해 잡히는 대로 작업을 했다. 지금이야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먼저 분배해 놓고 쓰지만, 내 작업을 할 때에는 그게 쉽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방향이 있을 것만 같아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에 늘 끝이 촉박했다.


 아쉬운 마음은 크지만 마감을 해 버리고 나면 결과물을 발전시킬 기회가 좀처럼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럴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들에 밀려 이전 것들을 돌아볼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자주 겪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감을 하고 난 후에는 일정 기간 동안 마음이 허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바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펑펑 남는다. 후련한 기분과 동시에 마감의 결과를 되돌아보면 이러려고 그렇게 똥줄을 탔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남은 것들을 잘 추려 놓으니 지나간 시간이 눈에 보이기도 했다. 결과물에 뿌듯한 점도, 아쉬운 점도 보이고 다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생각한다.


 어찌 보면 매일매일 잠이 드는 순간이 하루의 마감이다. 베개에 머리를 기대어 하루를 마감하고 나면 되돌리기 참 어려운 하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괴롭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당연히 내일이 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들고 지치는 일들의 끝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조금 더 나은 다음을 바랄 수 있다면, 매번 마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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