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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09. 2021

여기, 우린 동산빌딩에서

첫 번째 여름의 기록

사무실을 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빔(ENFP)과 노숀(ENFP), 그리고 나(ISTJ)는 서로 잘 맞을 것이라 믿어 함께 일을 시작했지만 (아님? 나만 그럼?) 이제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고 똑똑히 인지하려고 한다. 일의 우선순위와 디자인 취향, 의사소통 방식과 더불어 우리는 사무실을 구할 때조차도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제일 다른 것은 나였다. 노숀과 빔은 사무실의 위치는 상관이 없다 했지만, 나에게 위치는 중요했다. 매일 출퇴근할 때 소요되는 시간도 그러했고, 클라이언트가 사무실을 방문할 때에도 사무실의 위치는 주요하게 여겨졌다. 역세권이었으면 했고, 되도록 2호선이길 바랐다. 또 나는 사무실이 3층 이상이라면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면 했고, 우리가 비용을 조금 부담하더라도 주차장 한 면 정도는 쓸 수 있기를 바랐다. 게다가 나는 경사지도 싫어했다. 평지가 좋았다.


노숀과 빔에게 내가 우선순위로 꼽는 것들은 후순위였다. 창이 크고 볕이 잘 드는 것이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창밖의 풍경이 멋지다면, 언덕을 올라야 하는 경사지여도 괜찮았다. 사무실이 자리하는 건물 자체의 외관도 봤다. 주위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도 찾아봤다. 너무 주거지역이면 안 됐고, 또 홍대 한가운데처럼 너무 상업지로 변해버린 시끄러운 동네도 멋이 없었다. 나는 아마 지금도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100%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숀과 빔은 동산빌딩을 처음 마주한 그 순간 숨을 들이켰다. 첫눈에 반하는 소리였다. 옆에서 걷던 나는 이미 그들의 마음이 넘어가버렸음을 알아챘다. 아직 내부로 들어가 보기도 전이었다. 노숀은 말했다. 어쩜 이름도 동산이야?


그날은 주말이라 우리는 동산빌딩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외관만 보고 돌아섰다. 나는 동산빌딩의 외관이 을지로와 충무로에서 보기 드물게 깨끗하고 귀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지은 건물이었다. 이미 보기도 전부터 내부도 마음에 들 것 같다며 들떠있는 친구들이 나는 조금 의아했고 또 웃기기도 했다.



평일에 나를 빼고 노숀과 빔만 부동산 사장님을 대동한 채 동산빌딩 내부를 둘러봤다. 나는 빔과 노숀이 찍어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받아보기로 했다. 내부가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노숀이는 바닥에 층수가 신주(황동)로 쓰여있다고 아주 귀엽다는 평을 했다. 옥상에선 건물 사이로 서울타워가 보인다며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계단실의 창문이 아기자기하다며, 그곳엔 꽃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그런 요소들이 중요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본인이 좋아하는 점을 제일 먼저 전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의 시점에서 동산빌딩 4층 사무실은 딱 떨어지는 직사각형 공간이라 좋았다. 창호들은 오래되었지만, 열고 닫을 수 있었다. 창호를 바꿔주신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외관과 내부 풍경을 해칠 것이어서 거절했다. 대신 화장실 변기를 바꿔달라 협상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점은 양변기가 없었다는 점이었는데, 그게 해결되면서 동산빌딩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사라졌다. 주차도 선착순이니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었다. 을지로4가역과 충무로역을 모두 이용할 수 있으니 역세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우리가 봤던 사무실 후보들 중에 동산빌딩은 나에게 2순위였지만, 나의 ENFP 동료 2명에게는 강력한 지지를 얻는 1순위 후보였으므로 우리는 동산빌딩에 입주하게 됐다. 4층을 걸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금방 익숙해졌다. 낮이면 따로 조명을 켜지 않아도 사무실 내부는 밝았다.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동산빌딩으로 이사한 지 이제 3개월이 넘었다. 그 사이 사무실에 호옹이(고양이)가 같이 이사를 왔으며, 사무실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들여왔다. 벽에는 미팅용으로 TV도 달았고, 바닥엔 카펫을 깔았다. 카펫은 호옹이의 스크래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큰 창으로 해가 많이 들어와서 나는 블라인드를 치거나 선팅지라도 붙이고자 했으나 노숀과 빔이 기겁하며 거절해 말았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날이 좋은 날마다 창밖을 보며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됐다.



여름이 지나고 있다. 동산빌딩에서 지낸 첫 번째 여름을 기록하는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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