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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15. 2021

금기는 곧 비밀이 되었다

<비밀>

1


친구는 나의 귀를 작은 두 손으로 감싸고, 어떤 이야기를 전했다. 그와 동시에 이것은 비밀이라고, 나에게만 말해주는 것이라며 속삭였다. 별 얘기는 아니었지만, 비밀이라고 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다만 비밀이라면 나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듣는 대상은 왜 내가 되었을까 작은 의문을 품었을 뿐이다.


추후 나에게만 전해졌다고 알고 있던 이야기를 실은 모두가 다 함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작게 속삭이던 그 비밀은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에게 전해졌던 것이고, 서로 소리 내어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전혀 비밀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밀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 아마도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였을지도 모르겠다.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2


내가 가진 비밀들은 대개 금기에서부터 비롯됐다. 하지 말라는 말에 내 머릿속에는 곧장 물음표부터 떠올랐다. 특히 학교는 이해하지 못할 규칙이 많았다. 대부분의 규칙들을 지켰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할 때에는 비밀리에 해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납득하지 못하는 금기사항 앞에서.


책을 읽지 말라고 하면 숨겨서 읽었다. 책상 아래, 방석 아래 혹은 다른 책의 표지로 감싸거나 전자사전 안에 소설책을 담아 읽었다. 음악을 듣지 말라고 하면, 이어폰을 숨겼다. 이어폰 줄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등 뒤로 넘기면 이어폰 줄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어폰은 꼭 검은색을 사야 했다. 점심시간엔 교문 아래로 혹은 담장 너머로 배달 음식을 받았다. 급식은 맛이 없어, 몇 숟갈 떠먹고선 모조리 버려버렸다. 금기를 어기는 나의 비밀들은 사소했고, 죄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자라 어른 같은 것이 된 나는 이제 금기를 피할 궁리를 먼저 해내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과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력을 줄이고, 페스티벌에 들고 가면 안 되는 것들을 꽁꽁 숨길 방법을 찾아낸다. 조금 더 직업적인 측면에서는 준법과 위법의 경계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위법이라도, 들킬 확률을 가늠한다. 아슬아슬한 비밀들은 이제 돈이 되기 때문이다.




3


금기에 의해 발생한 수많은 비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밀은 스피크이지 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 처음 생겨난 스피크이지 바는 그 입구를 숨긴다. 익숙한 순서와 구조를 탈피해야 들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상식을 뒤집고 편견을 깬 공간을 만들어 낸다. 가게 안에 또 다른 가게가 있다거나, 전혀 입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책장이나 공중전화박스 안에 입구를 두는 식이다. 금기는 비밀을 만들지만, 때로 비밀이어야 창의성이 극대화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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