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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Feb 07. 2022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

<하기 싫음>

하기 싫은 일 앞에 앉아 있다. 하기 싫은데, 외면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미 미룰 만큼은 다 미뤘다. 몸을 베베 꼬면서 정해진 자리에 앉긴 앉았으나,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다시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기계처럼 계획대로 땡 하고 시작해서 최대한의 효율을 내서 일을 끝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하기 싫은 마음과 싸우느라, 오늘도 미적거리며 다른 데로 튀어나가는 생각을 붙잡는다.


하기 싫은 마음은 마치 시소처럼 다른 쪽에 올려진 나의 마음을 들어 올린다. 시험 기간엔 뉴스마저도 재밌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거하게 책상 정리부터 해야 하는 법이다. 평소엔 들여다보지도 않던 옛 일기와 앨범이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 그러다 추억 탐방이 끝나면 하기 싫은 일을 모두 처리한 후 되찾은 자유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계획하는 일도 퍽 즐겁다. 여행을 가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거나, 사두기만 한 채 책꽂이에 고이 보관되고 있는 책들을 왕창 꺼내 읽고 싶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브이로그까지 만들 결심을 하고 3만 7천 원을 주고 앱까지 구매했다.


하기 싫은 일 앞에서 자기 합리화는 어찌나 쉬운지. 오늘은 이만 다른 일(대체로 사소한)을 먼저 해치우고,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잦고 가벼운가. 이제부터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조금씩 시간을 모아 합친다면, 몇 날 며칠의 시간만큼을 벌어낼 수 있다고 내 머릿속 어디엔가 자리한 게으름뱅이는 그렇게 설득을 반복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어른이 되고자 했던 것은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늦은 밤에 민증을 들고 당당히 클럽에 들어가고, 술집에서 왁자지껄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는 예전에도 지금도 크게 관심이 없다. 다만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는 시간과 노력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피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른들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솔직히 어른이 되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비싼 밥도 제한 없이 먹고, 원하는 장소로 여행도 훌쩍 떠나고, 원한다면 새로 나온 닌텐도도 한순간의 충동으로 살 수 있으니 어른이 되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나면 그를 기반으로 하여, 하기 싫은 일은 돈으로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마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한 ‘어느 정도의 능력’이 내 예상보다 아마도 훨씬 컸던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데에 실패한 어른 1로 자란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있다. 오래도록 사용할 자격증 면허를 따기 위해 이틀에 걸쳐 방을 정리하고 책상을 세팅하고 새하얀 조명이 떨어지는 스탠드를 켰다. 이제는 가끔 낯선 샤프를 손에 쥐고, 지우개를 옆에 가지런히 놓고서.


다시 생각해 보니 애초에 지금 준비하는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도 노후의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도록 돕고자 함이었으니, 아마도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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