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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19. 2022

사무실 이사 일기

<이사>

D-14 (매물 찾기)


새로운 사무실을 찾기 시작했다. 네이버 부동산과 여러 앱을 통해 매물로 올라와 있는 사무실 후보들을 훑었다. 어차피 지역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정말 샅샅이 둘러봤다. 적어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무실 매물은 진짜 다 봤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새로 이사 갈 곳을 찾아냈을까. 전부 둘러볼 수 없으니, 그것은 아마 어떠한 종류의 인연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혹은 운이거나. 하지만 우리에게 이사는 정보 싸움이었다. 누가 더 빨리 좋은 매물을 찾아내느냐.


사무실은 밝은 곳이어야 했다.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에 행복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남향을 조금이라도 꼈으면 했고, 창은 클수록 좋았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주차가 되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또 아니었다. 넓고 깔끔하게 쓸 수 있는 곳이 더 중요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공간의 가능성을 점쳤다. 우리는 공간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공간을 고쳐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D-11 (계약 및 실측)


낯선 부동산 의자에 앉아 내밀어지는 여러 서류들을 살폈다. 부동산 사장님들끼리 도장을 찍는 사이, 건물주는 빤히 우리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여자 셋이 함께 일한다고 하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카페나 식당과 같은 요식업 쪽을 예상한다. 인테리어와 건축, 게다가 개발까지 한다고 하면 놀란 눈빛을 한다. 명함을 하나 줘보라고 한다. 상대방의 태도가 바뀐 것을 느낄 때면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직도.


계약 후 실측을 진행했다. 실측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역할 분담이 확실해서 척하면 척이고, 우리는 실측한 내용을 가지고 3D를 올린다. 우리가 가진 가구들이 제대로 들어갈지, 또 나누어져 있는 공간은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마우스를 가지고 휙휙 돌려보며 결정한다.



D-5 (카펫타일 발주)


을지로에 가서 직접 샘플을 보고 바닥에 깔 카펫타일을 발주했다. 예쁜 것을 골라내면 어김없이 비싸고, 그게 아니면 재고가 없단다.



D-3 (철거)


창문을 온통 막고 있던 나무 패널들을 모두 뜯었다. 철거만은 직접 할 수 없어 업체를 불렀다. 간단한 철거라고 생각했는데, 트럭 한가득 폐기물이 쌓였다. 친절한 철거 사장님들이 떠나시고 벽에 남은 잔여물을 뜯어내고 푹 파인 벽의 구멍들을 메웠다. 팔에 알이 배겼다.



D-2 (페인트칠 / 카펫타일)


이제 퍽 페인트칠이 익숙하다. 사무실이 이사할 때마다 페인트칠을 했다. 벽지 위에도 하고 콘크리트 위에도 발랐다. 카펫타일을 까는 것도 처음이 아니다. 친구들이 카펫타일을 얼마나 빨리 깔고, 잘 자르는지 놀랄 정도다. 이런 실력을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만 날씨는 또 더워서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D-1 (마무리)


하루 쉬려고 했는데, 페인트칠과 바닥공사 마무리를 해야 해서 다시 빈 사무실로 돌아왔다. 몇 번의 이사를 지나야 이런 일들을 직접 안 하게 될 것 같냐고 친구가 물었다. 아마도 우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도무지 몸을 움직일 시간이 안 날 때, 그럴 때 맡기겠지. 나는 대답했다.



D-day (이사)


현장에 도착하니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전깃줄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다며 냅다 우리 탓을 하는 스카이 사장님을 만나야 했다. 이게 문제고, 저게 안 되고. 결국 못하겠다고 두 손 들고 철수하셨다. 급하게 다른 사장님이 오셨고, 전깃줄 사이로 스카이를 보냈다. 될놈될이다. 이제 놀랍지도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는다.


철거 사장님에 이어 친절한 이사 작업자 분들은 일사천리로 우리의 짐을 옮겨다 주시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무실 고양이 호옹이를 데려왔다. 가방에 담아 밖으로 데리고 나오니 얼마나 서럽다고 꽥꽥 울어대는지, 거리의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봤다.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 않더니 하루가 지나서야 슬그머니 나와 고개를 내빼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좋은 사무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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