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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Sep 19. 2022

전혀 반갑지 않은, 하지만 때로는 서글픈 것

<이사>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꽤나 자주 이사를 했다. 너무 좁아서, 벌레가 나와서, 직장을 옮겨서 이런 갖가지 이유로 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원룸을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단 한번도 아쉬웠던 적은 없었다. 옮겨가는 곳이 이전에 살았던 곳보다 낫길 바라는 작은 기대와 혹여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공간에 하자가 있으면, 층간소음이 너무 심하면, 동네가 너무 소란스럽거나 지저분하면, 혹시 집주인이 사기꾼이면 어떡하지. 이사 직전까지 갖가지 걱정을 끌어안으며 전전긍긍 발을 구른다. 이렇듯 '이사'는 걱정을 가득 선사하며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성가신 것일뿐, 어떤 다른 감정이 들어갔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작년, 가족들이 17년만에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떠나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이다. 서울에서는 구(區)를 휙휙 옮겨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가 살지도 않는 본가는 같은 구(區), 심지어 걸어서 15분 정도 되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데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나는 그 곳에 머물렀던 17년의 기간을 떠올렸다. 나는 그 집에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까지 마쳤다. 17년 중 절반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곳은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집다운 집이었고, 내 유년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곳이기도 했다. 거실의 창으로 보이는 탁 트인 공원의 모습이 좋았고, 해질녘 뒷베란다에서 슬며시 들어오는 오후의 빛도 좋았다. 무더웠던 여름날엔 현관 앞이 시원해서 베개를 가지고 현관 앞에서 잠들곤 했다. 그랬던 집을 이제 떠난다니. 이 집이 더 이상 우리 가족이 것이 아니라니. 이 집에 다른 사람이 와서 살다니. 그런 집을 두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떠난다고 하니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들이 엉켰다.

이 풍경을 두고 이사를 떠났다




아마 내년쯤, 또다시 서울 자취방 이사를 해야할 것 같다. 전셋값은 왜이리 오른건지, 정말로 내가 서울에 살 자격이 있긴 한건지, 이제는 걱정에 회의감까지 덮쳐오면서 이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주거불안을 온 몸으로 겪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겐 '이사'가 결코 반가운 단어일 리 없다. 


부모님은 은퇴 후 또다시 이사를 갈 계획이라고 한다. 아마도 제주도로. 엄마, 아빠는 제주도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걸 말했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그럼 나는 이제 고향에 와도 집이 없는거야? 이제 고향에 내려올 일이 없겠네? 안 돼! 이사가지 마!" 나는 내가 나고 자란 도시를 잃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의 '이사'는 늘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여기엔 정이 있으니까. 정들었던 집, 정들었던 동네, 정들었던 도시를 떠나는 건, 이제 더 이상 나의 집, 나의 동네, 나의 도시가 아니라는 건 꽤나 서글픈 일이다. 


'이사'는 내게 결코 반갑지 않은 단어이지만, 꽤나 서글픈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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