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졸업 작품 준비를 하던 3월, 지도 교수님은 옛 서울을 한 바퀴 돌 것이라면서 반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바깥으로 향했다. 성곽과 크고 작은 문들로 이루어진 한양도성을 그 해 봄 수업 시간마다 구간을 나누어 걸었는데, 평생 서울에 살면서 성곽길을 따라 걸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직 이른 봄이었던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몸에선 열이 나고 숨이 거칠어졌다. 한 발 한 발 오르며 한눈에 보이는 서울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다가도,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이런 산 위로 올렸을까 감탄하며 성곽의 큼지막한 돌들에 손을 올려보기도 했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쌓이기 시작한 성벽들은 오랜 시간과 역사 속에 일부 훼손이 되어 지속적으로 복구되어 왔다. 가장 아래에 쌓인 불규칙적인 형태의 돌들 위로 점점 사각형의 형태를 갖춘 돌들이 쌓인 것으로 보아 크게 몇 번의 복구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태조(1396년) 때 1차로 구축된 성벽은 세종(1422년) 때 다시 한번,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한양 땅을 휩쓸고 지나간 뒤 숙종(1704년) 때 다시 한번, 순조(1800년) 때 마지막으로 이뤄졌다.
성곽은 남겨진 것들은 남기고, 그 위에 새로운 돌들을 얹어 더욱 견고하고 단단하게 다시 쓰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한양도성에 대한 안내와 전시가 이뤄지는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도 꼭 성벽과 같은 역사를 가진다. 적산가옥으로 지어진 이곳은 여러 번의 변화와 공사를 거쳐 지금의 전시안내센터가 되었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전국 곳곳에 일본인들이 묵을 주택이 세워졌다. 일본인들이 서양의 주택 구조와 외관을 따라 만들었던 문화주택은 남자를 위한 응접실과 여자를 위한 입식 부엌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뾰족한 박공지붕에 일본식 기와가 올려져 있는 형태로 대표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문화주택은 적들이 만든 집이라는 뜻에서 적산가옥이라 불린다.
현재의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된 적산가옥은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안내센터에 진입하기 위해선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며 일제강점기까지 시작되자 한양을 감싸고 있던 성벽의 돌들은 건축자재로 쓰였고, 이곳의 적산가옥은 해체되고 있던 성벽 위에 지어져 일본인 영화제작사 사장의 개인주택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는 온전한 외관을 보기 어려웠지만, 계단을 오르자 흰색 외벽과 붉은 기왓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옥에 비해 턱없이 짧은 처마와 구부러지지 않는 직선의 지붕 구조가 전통적인 한옥과 대비된다. 한옥은 기능에 따라 여러 실을 넓게 땅에 펼쳐 외부 공간을 감싸는 형태로 중정을 만들고 내부 공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당과 마루를 거치게 되는 위계가 있는 반면, 적산가옥은 마치 여러 겹의 옷을 입은 것처럼 하나로 뭉쳐 실들을 복도로 연결하는 형태로 지어졌다. 일부는 1층으로, 또 일부는 2층으로 지어져 여러 지붕이 겹쳐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수의 적산가옥들이 해방 이후 허물어졌지만, 일부는 남아 과거를 기억하는 유산이 되었다. 특히 성벽 위에 지어졌던 이 적산가옥은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1959년부터는 대법원장의 공관으로 사용되었고, 1981년부터는 서울시장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청와대에 대통령이 살았던 것처럼, 이곳에는 서울시장이 재임기간 중 머무는 곳으로 쓰였다. 무려 33년 동안 13명의 서울시장이 거주하였으며 1층을 업무를 위한 회의실과 응접실로, 2층을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공간으로 활용했다.
서울시장의 공관이던 당시 이곳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전시장 내부에 설명되어 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인 개인의 주택으로 지었던 공간을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공간으로 분리하여 쓰다 보니 실을 나누는 긴 복도가 생겨났다. 방과 방을 얇은 칸막이 문으로 나누기도 했으며, 1995년도까지는 다다미방이 유지되었던 것이 사진을 통해 기록되어 있다.
2013년에 서울시장 공관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고 이후 건물을 일부 철거하고 복원하며 보수공사를 더해 2016년 한양도성을 전시하고 안내하는 곳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주택으로 쓰이며 응접실, 거실, 주방과 방을 모두 벽과 문으로 나누어 막았던 것과 달리, 전시장은 내부의 벽을 헐고 목재 기둥과 지붕 구조를 모두 노출했다. 눈에 띄는 점은 본래의 구조와 새로 덧댄 구조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도록 다른 재료와 형태를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는 복원의 의미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남쪽의 창을 크게 내어 건물 안으로 해가 길게 들어온다. 오후가 되면 마당의 나뭇가지 그림자가 건물에 앉아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형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현대의 것과 섞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매만져진 공간에서 관람자는 일제강점기에서 근현대까지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았던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를 관람하고 난 뒤, 한양도성을 직접 한 바퀴 걸어보는 여행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샘터 2023년 2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