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Mar 06. 2023

고정불변의 건물에서 움직이는 음악

콩치노 콘크리트

애플 에어팟이 처음 출시 되었을 때,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마치 세상에 나와 32만 원(당시 에어팟의 가격)만 남은 것 같다며 감탄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주변의 소음이 순식간에 삭제되는 경험은 실로 놀라웠기 때문에 그러한 호들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너도나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과 헤드폰을 찾게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주변의 다양한 소음으로부터 손쉽게 도망친다.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공간을 찾거나 환경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편안한 의자만 있다면 그곳이 공연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로 홀로 음악을 듣는 요즘,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공간에서 하나의 음악을 경청하는 일은 이제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곡에 대해서, 악기에 대해서, 아니면 그와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콘서트 홀임과 동시에 음악감상실인 파주의 콩치노 콘크리트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이다.




소리와 공간의 상관관계



콩치노 콘크리트의 주인공은 1920-30년대 미국과 독일에서 만들어진 극장용 오디오 시스템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큰 사이즈로, 한쪽 벽면을 메우며 위용을 자랑한다. 또 하나의 벽면을 가득 채운 LP 중 일부가 선별되어 턴테이블 위에 놓여 재생되기 시작한다. 콩치노 콘크리트의 목적은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 시대의 음악을 들려주는 데에 있으니, 공간의 설계는 소리를 담는 좋은 그릇을 빚는 일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리를 담는 공간의 크기와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마치 멀리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손을 입 주변으로 모아 소리치거나, 소리의 지나친 반사와 전달을 막기 위하여 벽면에 스펀지를 붙이는 것처럼 공간은 소리를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 마침표가 된다.



콩치노 콘크리트의 중심 공간이자 스피커가 자리하고 있는 연주 홀은 정육면체에 가깝도록 공간을 넓고, 높게 열어두었다. 스피커로부터 시작된 소리는 방해 없이 공간에 균일하게 울려 퍼진다. 9m에 달하는 층고를 따라 메인 홀인 2층뿐 아니라 3층과 4층까지도 소리는 공간의 통로를 따라 직접 가 닿는다. 일반적인 건물의 층고가 3m 정도 된다고 계산하면, 건물의 3층 높이 공간이 모두 벽의 구획 없이 개방되어 있는 셈이다. 비어있는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 채워진다.




모두의 감상을 위한 건축의 자세


집중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찾는 장소와 분위기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도서관 열람실과 같이 칸막이가 세워져 있는 구석진 자리를 선호하는 반면, 또 어떤 이는 넓은 카페의 큰 테이블에서 백색 소음이 들려올 때 더 집중할 수 있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콩치노 콘크리트의 스피커 앞에는 마치 공연장처럼 의자들이 오와 열을 맞춰 나열되어 있다. 가장 앞줄에 앉을 수도, 아니면 측면의 끝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가장 가까이서 날것의 소리를 듣고자 함이라면 이곳이 가장 좋은 자리가 될 것이다.



정면이 아니라면 위쪽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 스피커보다 한 층 위, 계단을 올라오면 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좌석이 측면에 마련되어 있다. 공중에 걸린 듯 매달려 있는 3층의 발코니 좌석들에서 사람들은 음악 옆으로 빗겨 앉아 의자 깊숙이 몸을 뉘인다. 음악을 배경 삼아 책을 펼치기도 하고,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도 한다. 그 옆에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근경을 바라보는 것보다 저 멀리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은 창문 프레임 뒤의 풍경을 마치 그림처럼 관망한다.


2층에서 3층 그리고 4층까지 다양한 좌석들 사이로 콩치노 콘크리트를 방문한 사람들은 원하는 자리를 찾아 공간 안을 걷기 시작한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소리를 산책하는 여정을 거쳐 자신만의 자리를 잡는다.




음악의 뒷면, 쏟아지는 풍경



일반적인 공연장과는 다르게 콩치노 콘크리트의 홀에는 외부로부터 햇빛이 깊게 들어온다. 사방으로 뚫려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의 움직임에 따라 빛의 색도, 깊이도, 그림자의 음영도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건축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지만, 소리와 빛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



음악으로 내부가 가득 채워진 콩치노 콘크리트의 외부로 눈을 돌리면 임진강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강 너머로 보이는 겹겹의 산맥들은 금방이라도 가 닿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지만, 도달할 수 없는 북한의 땅이다. 콩치노 콘크리트의 서쪽 창 앞에서 자리를 잡는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오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산맥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일몰의 풍경이 펼쳐지자, 콩치노 콘크리트의 홀 내부도 따라 붉게 물들어 버린다.



콩치노 콘크리트가 가진 반듯하고 정직한 사각의 외형 안에 이러한 유동적인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쉬이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시각과 청각이, 과거와 현재가 만나 어우러지는 동적인 세계가 이곳에 있다.




샘터 2023년 3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