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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pr 02. 2023

원이 공간이 된다면

원불교 원남교당

국내 여행을 다닐 때면 지역의 큰 절을 일부러 찾는다. 산속 자리를 잡은 사찰 사이로 산책을 하다 대웅전 앞에서 희미한 향 냄새와 목탁 소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평안해 지곤 했다. 해외에선 성당의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공간을 유심히 살피기도 하고,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에 끄적이기도 했다. 머묾만으로 치유가 되는 공간들이 분명 있다. 특히 종교 건축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마음을 일게 한다. 서울에도 그런 곳이 있을까.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서울의 구도심은 복잡하다. 산길과 물길을 따라 나뉜 건물과 골목은 제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채 마치 복잡한 모양의 퍼즐처럼 도시를 이룬다. 땅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모양은 사람으로 따지면 DNA처럼 어떤 건축이 자라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삐뚤빼뚤하고 얼기설기 얽혀있는 구도심의 땅들은 역사적 맥락은 물론이고 주변 도시 환경과도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데다가 현대의 건축 법규에 맞춰 적절히 기능하여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이곳 원불교 원남교당은 북쪽으로는 서울대병원을, 서쪽으로는 창경궁을, 동쪽으로는 대학로를 마주하는 구도심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주택들이 모여 있던 동네에서 세 필지를 합필하였기 때문에 땅의 모양은 이형이다. 똑바르지 않은 땅에서의 건축은 직각 사각형의 대지보다 조금 더 까다롭다. 각이 안 맞아 활용할 수 없는 공간들이 필연적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원불교 원남교당은 처음 이곳에 자리 잡을 때부터 땅에 지키고 있던 은행나무를 해치지 않고 건축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원불교 원남교당은 세 개의 건물이 따로 세워진 것과 같은 형상으로 설계되었다. 큰 도로로부터 곧장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육안으로 파악할 순 없다. 건물이 가진 여러 면들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건축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공간도 모두 나뉘어 있기 때문에 세 개의 건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고즈넉한 마당을 감싸고 있는 건물들이 결국에 하나라는 것은 원불교 원남교당을 직접 걷다 깨닫는다.




마치 원처럼 순환하는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원불교 원남교당의 공간들은 복잡한 외부의 도심을 시각적으로 차단한다. 티 없이 깨끗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곡면의 벽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는 커튼처럼 서 있다. 도심과의 의도적인 단절은 신도들로 하여금 내면의 수련에 더욱 집중하게 하지만 이곳이 오로지 단절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원불교 원남교당은 필지가 면하고 있는 7개의 골목을 모두 이어 열었다. 크고 작은 길들을 통해 원남교당의 내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내부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원불교 원남교당은 동시에 외부에서의 흐름을 모두 받아 연결하며 도심과의 유대와 소통을 이루고자 한다.


외부만을 연결한 것은 아니다. 세 개의 건물처럼 보였던 공간들은 공중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지하에서 이어지기도 하면서 또 하나의 산책길을 만든다. 원처럼 순환하며 건물 바깥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바깥으로 순환하며 자연스레 이동하게 된다. 건축이 보여주고 있는 주변과의 적극적 연결은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존재하는 원불교와 일면 닮아있다.




원이 공간이 된다면



원불교 원남교당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은 신도들이 모이게 되는 대각전이다. 다른 종교 건축과 마찬가지로 높은 층고와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공간이지만, 원불교를 상징하는 정면의 거대한 원은 대각전에 들어서자마자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쉽게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저 원을 벽에 그리기만 하는 것이었다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설계자였던 조민석 건축가는 원을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폭과 높이는 8.4m, 두께는 18mm인 철판에 지름 7.4m 지름의 원을 뚫고 그 뒤로 곡면의 빈 공간을 두었다. 천창에서는 외부의 빛이 유입되고, 아래층에서는 인공조명이 쏘아져 올라온다. 두 방향에서 시작된 빛이 원 안에서 만나고, 휘어있는 공간의 벽 위에서 공간감은 극대화된다. 평면은 순간 입체가 되어 철판으로 만든 원의 배경과 대비되어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외부의 빛이 내부로 들어오기 때문에 원의 공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계절에 따라서도, 날씨에 따라서도 다르다. 한순간도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원의 공간을 그려냈기 때문에 자칫하면 둔탁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섬세하게 조직된 천장의 목재 그리드는 대각전의 공간을 세심하게 엮어낸다. 대각전에 입구에서부터 한 계단씩 낮아지는 의자들과 달리 천장의 그리드는 땅의 리듬에 맞춰 점점 더 높아진다. 공간의 옆면에서 바라보면 점점 커지는 크레셴도 표시처럼 대각전은 음악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원불교 원남교당을 절을 산책하듯 걸었고, 대각전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공간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건축이 힘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부분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샘터 2023년 4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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