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들을 가끔씩 한다. 매거진 쪽에 공간과 건축 관련해서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보수와 일정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일단 가능하면 긍정적인 답을 주는 편이다. 내 글이 부족하더라도 (이제 너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건축과 공간을 누리는 즐거움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용돈을 받는 것처럼 추가 수익이 생기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다.)
샘터에서 연재를 하다 이후 한 1년 정도는 별다른 요청 없이 개인적인 글만 써오고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 여러 브랜드에서 요청이 있었다. 브리크 매거진에서 도서관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고, LX하우시스 웹매거진에도 일반인들이 읽을 만한 글들을 여럿 보냈다. 그리고 올해 나의 가장 큰 도전을 꼽는다면 그건 역시 넷플연가에서 모임장을 하기로 한 일이다.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대부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다른 글쓰기 의뢰와는 다르게 아주 깊은 곳에서 거부감부터 올라왔다. 넷플연가는 최대 12명의 사람들이 모여 모임을 갖게 하는 플랫폼이다. 모임장이면 12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시즌 별로 4회 모임이고, 1회 모임 당 시간은 3시간이다. 3시간? 나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3시간 동안에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어떤 주제로 모임을 이끌어야 할지 상상만 해도 아득해져서 포기하고만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결론적으로 시즌2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어제, 새로운 모임으로 만난 분들과 함께 한남동에 전시도 보러 갔다 왔다. 건축에 관련된 업무를 본업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정말 건축과는 영 연결되지 않을 낯선 직업을 가진 분들도 오신다. 그럴 때면 그 직업에 대해서 나도 역으로 물어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시즌2를 하고 있다고 쉽냐고? 아니, 사실 그렇지는 않다. 왜냐면 그들은 모두 시즌1 때 만난 분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분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내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있을지, 또 이 모임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을지, 그리고 이 모임이 모두 끝나고 나면 건축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지. 이런 작은 고민과 걱정들이 쌓여 항상 모임을 갖기 전엔 마음이 무겁다. 마음이 무거워서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예상할 수 없는 대화 흐름을 상상하려고 애쓰면서.
누가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첫 모임 10분 전이 가장 부담감이 큰 순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즌1과 시즌2 모두 12명의 인원이 모두 채워졌다. 심지어 첫 번째 모임에는 모든 사람들이 참석해 주시곤 한다. 긴장감에 물을 많이도 마셨다. (물을 많이 들이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왕 큰 텀블러를 준비했다.) 모임이 끝나고 나면 끝났다는 안도감에 힘이 쫙 빠진다. 할 일도 없으면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멍하니 혼자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집에 가기도 한다.
모임을 가지면서 소원이 새로 하나 생겼다. 한 번도 외향인들을 부러워한 적이 없었는데(난 원래 보통 부러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외향인이라면 이런 모임을 가지는 일들이 훨씬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과 같은 타격이 없을 것이라니. 조금 더 외향인이 되면 많은 일들이 쉬울 수도 있겠다. 막연히 부러워진다. 새해에 소원을 하나 빈다면, 외향력이 조금 더 향상되기를. 아니, 외향인으로서 평생 사는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 갑자기 3시간 만이라도 외향력이 강해지는 필살기 같은 능력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