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매년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는 날이 돌아오면 눈을 꼭 감고 입 안으로 소원을 빈다. 어째 소원이라는 건 입 밖으로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원을 원없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절이다. 이렇게 절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서 돈을 내고 기왓장에, 연등 아래 마음 속 깊은 곳에 품은 소원을 적어 올린다. 지난 초여름 아주 오랜만에 경주에 갔다가 불국사에 들렀다. 비가 조금씩 내려 축축하게 젖은 날이어서, 서둘러 석가탑과 다보탑을 한 바퀴 둘러 구경하고 대웅전 옆 회랑을 따라 걸었다.
회랑의 천장은 연등이 오와 열을 맞추어 빼곡하게 달려 있고, 연등 아래에는 시주한 사람의 이름과 기원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소원을 발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회랑의 천장으로는 모자라 극락전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연등을 달기 위한 가설 구조물까지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가족건강, 가정평안, 사업번창, 삼재소멸, 만사형통, 좋은인연, 무병, 권세, 유복, 장수, 결혼, 취업, 연애 등등 대부분 비슷비슷한 소원의 말들. 모든 소원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마음들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저주하는 일이 소원으로 적힌 연등은 하나도 없었다. 연등 하나 올리는 것에 얼마의 돈이 드는지는 몰라도, 그런 일에 땡전 한 푼 쓰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척들과 외할머니 댁에 모여 잠을 자곤 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촌들과 밤낮 몰려다니며 도시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고 놀았다. 어느 여름이었나, 모여서 마침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이라고 했다. 할머니 댁 사랑방으로 들어가는 마당은 땅이 도로보다 낮아 콘크리트를 부어 비탈을 만들어 놓았는데, 누워서 하늘을 보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각도였다. 우리는 그 비탈길에 나란히 누웠다. 어! 떨어졌다! 봤어? 별똥별 꼬리만 보아도 본 걸로 쳐 주나? 일단 빌고 봐! 아주 간절한 소원이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막상 떨어지는 별을 보니 뭐라도 빌어야 할 것 같아 나도 급하게 무병장수, 가족건강 등 중요하지만 좀 시시한 소원을 빌었다. 미리 준비 좀 할 걸. 멋진 소원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별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나중에는 머리를 열심히 짜내야 했다.
이번 주 토요일 밤, 그러니까 12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밤 올해 최대 유성우가 떨어진단다. 시간당 최대 120개에서 150개의 별똥별이 쏟아질 거고, 달도 초승달로 관측하기가 아주 좋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까만 하늘을 보러 어디든 가고 싶다. 마음에 간직했던 멋진 소원을 빌기 좋은 날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