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까운 세계

<올해의 책> 『천 개의 파랑』

by 민진킴

사실부터 말하자면, 『천 개의 파랑』은 올해 발매된 책도 아니고, 내가 올해 읽은 책도 아니다. 이 책은 2020년 출판되었고, 나는 2024년 12월에 이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책으로 『천 개의 파랑』을 꼽고 싶은 건 올해 내내 이 책이 나를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툭- 하고 나를 건드리고 가는 책. 끈덕지게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책이었다.

SF 소설이라기에 주저 없이 책을 펼쳤다. SF 소설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문학은 내게 철저히 재미의 영역인데, 때론 상상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읽는 내내 떠올라 나를 괴롭히곤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도망치듯 SF를 찾아 읽었다. 그 세계관 안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사회적 문제와 갈등이 존재하지만 왜인지 지금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난다. 그래서 나는 늘 한 발 물러서서 그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

『천 개의 파랑』을 읽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른 세계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나는 도망갈 수 없었다. 그 세계는 멀리 있지 않았다. 우리의 코앞에 있는 미래였다.

일 년 내내 전국 장애인 연합회의 시위가 이어졌다. 출근길 지하철이 멈춰 설 때마다 휠체어를 끌며 묵묵히 길을 지나가던 책 속 '은혜'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멀지 않은 미래에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이동권 같은 건 곧장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책 속의 은혜는 여전히 휠체어를 끌고 있었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휠체어가 공존하는 미래라니.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은혜에 대한 미안함이 커졌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쳐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던 나에게 은혜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가 승마 체험을 했다. 말은 내가 올라가자 몇 번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혹시 내가 불편한가 싶어 관리인에게 물으니 원래 주의가 산만한 아이란다. 원래 경주마로 태어난 종이라 손님이 없을 땐 관리인과 함께 제주도의 들판을 달린다고 했다. 약 15분 동안 말의 위에서 제주도의 경치를 구경하며 책 속 '투데이'를 생각했다. 혹시 너도 투데이처럼 아픈 건 아니지. 네 위에 있는 게 인간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기수라면 평균 수명 30년이 아니라 50년 그 이상도 뛸 수 있는 걸까. 말에게 닿지 못할 물음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 밖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의 움직임을 닮아가는 로봇을 볼 때마다, 점점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AI를 마주할 때마다, 자동화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연재, 그리고 은혜의 아버지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어쩌면 이 책은 2025년의 책이 아니라 2026년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모습은 점점 더 이 소설을 닮아갈 테니까. 가까운 시일 내 『천 개의 파랑』 속의 세계가 너무 가까워졌을 때, 상상 속 세계보다 더 잔인한 현실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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