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
연말이 되니 새해를 앞두고 지난해를 되돌아보는데, 아무래도 왜인지 연말 느낌이 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도 이래저래 슴슴하게 지나가버린 것 같고, 예전에 비해 연말모임도 많지 않다. 느낌 탓인지 거리도 한산한 것만 같고. 올해 이룬 게 뭐더라, 생각을 해봐도 분명 바쁘게 달리긴 했는데 손에 쥐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올해 부정할 수 없이 큰 이벤트는 추석 연휴에 요르단과 이집트를 다녀온 일이다. 올해의 여행이라고 꼽았지만, 대학교 때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후 가장 길게 한국을 떠나 있던 여행이었으니, 다만 '올해'의 여행만은 아닐지도. '2020년대'의 여행쯤 될지도.
프리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나갈 때 느끼는 것이지만, 요르단과 이집트의 사막과 바다에서도 나는 얼마나 작은지. 끝이 없이 펼쳐지는 모래와 붉은 지형 사이에서 나는 그저 여기에 아주 잠깐 머무르는, 아주 작은 존재인 것이 오히려 마음을 뻥 뚫어주는 시원함을 안겨준다. 광활한 공간 안에서 내가 느끼는 마음을 차마 문장으로 표현해 내기 힘든 것. 그것이 벅참인가? 그게 복받침인가? 같이 간 여행에서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F 친구들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눈물까진 역시 힘들지 않으려나.)
또 하나 잊기 힘든 점은 다합의 바다에서 CWT PB를 세웠다는 점. 다합의 바다는 좋다. 조류와 너울도 없고, 밝고, 시야도 좋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수온약층도 없다. 40미터는 프리다이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가졌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이집트 다합에서 이룬 일이라니, 아무래도 잊기 힘든 추억이 되겠지.
OTT를 이용하게 된 이후, 본방을 챙겨보는 일은 아주 극히 드문 일이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도, 각자 보는 콘텐츠도 다 다르고 챙겨보는 시간도 다르다. 그런데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만나버린 것이 <신인감독 김연경> 배구 예능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거실에 쪼롬히 앉아서 가족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방송을 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의 일이었는지.
우연히 하이큐 만화책을 정주행 하자마자 <신인감독 김연경>을 보니, 만화에서 나왔던 포지션과 기술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보며 더욱 흥미진진하게 보게 되었다. <신인감독 김연경>이 재밌었던 것은 배구에서 각자가 가지는 역할과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 전체를 조망해 주었다는 점인데, 선수들도 이런 훈련은 처음 해본다고 후기를 여럿 남겼으니 실제로 김연경의 경험이 많이 녹아든 커리큘럼이 아니었나 싶다.
<신인감독 김연경> 이후로도 내 알고리즘은 배구에 지배당하여 여전히 배구 하이라이트 숏츠가 올라온다. 흥국생명으로 들어가게 된 이나연 선수나, 정관장에서 활약하게 된 인쿠시 선수를 예능 밖에서도 응원하게 된 것은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민아가 우리 집 옆 체육센터에서도 배구 클래스가 있다고 하던데, 역시 나는 아무래도 '아웃사이드 히터' 아니면 '아포짓 스트라이커'가 되려나 상상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취미로라도 해보고 싶은 스포츠가 하나 늘었다. 주위에선 더 취미를 늘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렇지만 하면 또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