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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15. 2017

사진, 자유롭지 않은 저작권의 문제

어디까지 눈을 감아야 하나

01

2015년의 파빌리온 작품 그리고 사진



2010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니 이제 무려 8년 차다. 디지털, 필름 가릴 것 없이 찍어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고, 전시에도 참여하곤 했다. 엽서도 만들어서 팔았다.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온 셈이다. 그러면서 초반에는 꼭 사진에 내 이름을 넣곤 했지만 오히려 사진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더 이상 사진마다 내 이름을 적지는 않는다. 어차피 돈을 받고 찍고 있지 않고, 누군가의 초상권을 침해할 만한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서 가장 사진을 깨끗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또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사진에 아무리 이름을 적어봤자 금방 지워버리거나, 잘라버릴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2015년, 건축학부 마지막 학년을 다니면서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시절 UAUS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취지가 좋은 모임이었다. 건축학을 공부하는 서울의 대학교들에서 각 학교마다 팀을 뽑아서 파빌리온을 만들어 전시한다. 파빌리온이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작은 가설 건축물을 의미한다. 보통 작게는 벤치, 크게는 지붕이 있는 무대 정도의 사이즈를 일컫는다. 물론 더 거대한 파빌리온도 존재하지만.


당시 DDP에서 전시가 진행되었는데, 우리 팀이 만들어냈던 작품은 꽤 화려한 모양새를 하고 있던 터라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갔다. 인스타에서 해쉬태그를 검색하면 쉽게 DDP에 걸려 있는 우리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의 작품을 허락 없이 찍는 것? 그것은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사실 기쁜 일이었다. 어느 정도 의도했기 때문이었다. 건축이라는 것이 그렇다. 예술의 영역에 발 하나 걸치고 있지만, 결국엔 공공재의 영역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건축물에 저작권이니, 초상권이니 하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준공이 되는 순간 도시의 영역에 흡수되어 버린다.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들이 건축물의 디자인 저작권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을 막는다면, 사진은 오로지 실내 스튜디오에서만 찍을 수 있는 예술로 한정되어 버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도 그래서 우리 작품을 찍었다. 사람들이 작품을 즐기고, 그 아래 앉아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었다.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했지만, 내가 찍은 사진은 우리 작품의 대표 사진으로 쓰였다. 최종 발표 때에도 쓰였고, UAUS 기획단에게도 사진을 큰 사이즈로 넘겼다. UAUS의 도록에도 실렸고, 그 이후 UAUS를 홍보하는 웹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전혀 개의치 않을 일이었다. 대학생들의 이런 활동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고, 우리 팀의 작품이 계속해서 눈에 띄는 것이 뿌듯했다.



UAUS 홈페이지 속 첫 번째로 보이는 우리 팀 작품


작품을 찍은 대표 사진들 중 하나




02

2016년 나도 모르게 마주친 작품과 사진



작년 말, 친구에게 따로 연락이 한 통 왔다. UIA의 웹사이트에 내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UIA는 서울 세계 건축 대회를 일컫는 말로, 국제 건축 연맹인 UIA와 한국 건축단체 연합, 그리고 서울특별시가 함께 주최하는 큰 행사다. 건축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전시한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자, 눈을 씻고 봐도 내 사진이 맞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다시 찾아서 열어 두 사진을 비교해봐도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닐 수 없었다.


http://www.uia2017seoul.archi/congress/congress_04.asp


해당 사이트 캡쳐 이미지



'학생 및 젊은 건축인 플랫폼'이라는 뭔지 모를 것을 소개하는 이미지로 내가 참여했던 작품,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이 번듯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건축가로서 의아함이 먼저 들었고,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는 저작권 침해를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웹사이트에는 위 사진이 어떤 행사에서 어떻게 찍힌 사진인지도, 누구의 작품을 찍은 사진인지도, 누가 찍은 사진인지도 전혀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그저 젊은 누군가가 한 작품이거니, 그 정도의 얕은 정보만을 습득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품과 나의 사진은 어떤 경로를 통해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의 웹사이트에 버젓이 올라가게 되었을까. 답은 UAUS에서 들려왔다. UAUS는 UIA를 주관하는 조직위원회와 어느 정도 관계를 가지고 2017년 9월에 열릴 UIA 행사에 참여하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는데, UIA 측에서 아무래도 UAUS의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사진을 허락 없이 갖다 쓴 모양이라는 설명이었다. 아마 어린 친구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별생각 없었던 것 같다고. UAUS는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다음 회의 때 UIA 측에 이런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것은 작년 하반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몇 달은 족히 지났고, 바뀐 것은 없다.




03

어디까지 눈을 감아야 하나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저작권에 관련하여 검색을 몇 번 해보았고, 아마도 이 사안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인가,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다. 아는 변호사가 있으면, 물어볼 텐데.


단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작가'라는 직업으로 사진 작업을 하고 계시는 포토그래퍼 분들은 자신의 사진에 대하여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계 사무소에서 의뢰해 건축물의 사진을 찍지만, 그 사진의 저작권은 사진가에게 귀속된다. 다른 잡지나 매체에 소개될 경우 그 사진은 추가 비용을 내거나, 사진가와 따로 협의가 되어야 한다. 세계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웹 잡지인 archdaily에서는 건축물을 디자인한 건축가보다 그 건물 사진을 찍은 포토그래퍼의 이름을 더 많이, 자주 볼 수 있다. 사실 사진 아래 이름이 꼭꼭 명시되어 있다. 사진을 마음대로 갖다 쓰지 못한다는 것이 성가시지만, 그들의 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히 맞다.



나는 지금도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으로 설계된 건물의 사진을 찍고, 회사 이름으로 웹사이트에 올리고 있지만 그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이 없다. 회사가 잘 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친구들이 내가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꽤나 잦고, 그것도 나에겐 기쁜 일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업계라는 것밖에는 공통점이 없는 행사에 내가 참여한 작품과 내가 찍은 사진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게시되어 있는 것을 우연히, 다른 경로로 발견했다. 허락은 없었고, 미리 통보조차 없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애초에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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