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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02. 2017

문을 열면 과거로 돌아갈까

뉴서독안경

공사가 시작되면 현장 갈 일이 많아진다. 사무실에 앉아 도면만 꼼꼼히 그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도면에 미처 표기되지 못했던 것들, 현장에서 판단하기에 변경하면 더 좋은 점들, 도면을 보고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착공한 이후 완공될 때까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현장에서 전화가 오면, 당일 계획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곧바로 사무실을 나설 때가 많다. 꽤 자주 그런다.


도면을 가방에 넣고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면, 길들이 눈에 익기 시작한다. 나는 차가 없는 뚜벅이라서 지하철에서 내려 현장까지 걸어가는 동안의 길을 직접 걷기 때문에 특히나 그렇다. 분명 처음에는 스마트폰 속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느라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도 기억 못 하다가, 점점 기억에 덧칠이 된다. 길이 외워지고, 주변 건물들이 보인다. 





현장 가는 길에는 뉴서독안경이라는 안경점이 있다. 뉴서독이라니, 마치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단어 선택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드라마 1988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뉴서독안경점에서 취급하는 콘택트가 지금 내가 사용하는 콘택트렌즈가 맞을까 순간 의문이 들었다. 문을 열면 30년 정도의 과거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재밌는 건 바로 건너편에는 '이태리' 안경점이 있는데, 뉴서독과 비슷한 정도로 오래되어 보인다는 점이다. 라이벌인가 보다.



문을 열면 다른 세상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판타지의 영향이다. 9와 2/3 승강장을 지나거나, 포트키에 손을 대고 순간이동을 하던 해리포터부터 서울과 캐나다를 문 하나를 두고 왔다 갔다 하는 도깨비에 이르기까지 나는 학습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학습된 상상이더라도, 질리지 않게 재밌는 상상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나 뉴서독안경처럼 주변과 동떨어지는 세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때,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과거의 안경점이 내 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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