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의 아씨씨 그리고 로마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면, 난 항상 양해를 구해야 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닐 것이고, 때때로 한참 멈춰서 있을 것이니 먼저 이동하여도 괜찮다. 내 속력에 무리해서 맞출 필요 없고, 내가 맞출 터이니 날 너무 신경 쓰지 말아달라.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는 여행의 동행자에게 내 리듬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여행 중의 나는 손발이 매우 바쁘다. 좋은 장소와 좋은 뷰를 만날 때면, 그것을 DSLR로 여러 구도에서 찍고 동영상으로도 남기고, 필름 카메라를 다시 꺼내 여러 구도로 한 번 더 찍는다. 좋은 카페와 성당에서는 스케치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글을 쓰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버릇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여행에 다녀와서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남기지 못한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1년에 한 번은 나와 여행을 떠나곤 하는 나의 동생 민아는 내가 사진 찍을 동안 나의 짐을 들어주고 거리에 우뚝 서서 내 옆에서 멍을 때릴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다. 여러 장소를 나와 돌아다니는 남자 친구는 내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제는 스케치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하였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렇게 여러 동행자들의 시간을 뺏어가며 남긴 많은 기록들은 내가 여행에 돌아와서도 숙제처럼 하드디스크에, 필름 속에 들어 있으면서 다시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굉장히 많은 사진과 영상들이 그렇게 잠들어 있다. 열심히 꺼내 주려고 하는데, 꺼내는 속도보다 새로운 사진들이 잠드는 속도가 빠른 것이 항상 문제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은 필름 현상을 맡기는데, 필름을 뒤지다가 새 필름이 들어있는 통에서 다 찍은 필름 한 롤이 발견되었다. 내가 모르는 언젠가, 필름을 맡기려고 다 찍은 필름들을 꺼내다가 손가락 사이로 한 롤이 빠져나가 그대로 그곳에 봉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떤 사진이 들어있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 한 롤을 현상소에 맡겼다. 감은 필름 위에는 항상 어떤 필름인지 따로 표시를 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흑백 필름이었다. ISO 400.
며칠 후, 현상소로부터 필름이 스캔되어 있는 파일들을 받았다. 선물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파일 미리보기로 37장의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아, 무려 2년 전이었다. 2년 전, 유럽의 시간이 그곳에 담겨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져온 필름들은 10 롤이 훌쩍 넘었다. 20 롤 가까이 되었던 필름들을 한꺼번에 맡기다 보니, 한 롤 정도 빠졌다고 해도 티도 나지 않았던 것. 덕분에 나는 2년 만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다. 흑백으로 찍혀 있는,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그 시간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럽 여행을 함께 떠난 다솔이의 제안으로 아씨씨에서의 1박을 계획했다. 아씨씨의 성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고, 아씨씨에서는 겨우 하루 보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아씨씨에 대해선 많이 알지 못했고, 더군다나 2년이 지난 지금, 아씨씨는 흐릿한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미지는 짙은 안개와 좁게 이어지는 골목길.
해가 지기 전, 아씨씨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Rocca Maggiore로 올랐다. 아씨씨의 요새였다. 짙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이 빠른 속도로 아씨씨를 감싸고 있는 산을 넘었다. 곧 안개는 아씨씨 위로 낮게 깔렸다. 안개 뒤에서 해가 떨어졌다.
Rocca Maggiore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이곳이 음식을 파는 곳이 맞는 것인가 고민했다. 매우 배가 고팠고, 음식을 내주기만 한다면 어떤 메뉴든 상관이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움직였던 터라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이었다. 다행히 따뜻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고, 그제야 다시 다솔이와 나는 여유로운 표정과 성정을 되찾았다.
얼리어답터가 못 되었던 나와 다솔이는 한 달간의 유럽 여행에서 데이터 없이 와이파이에 의존해 한 달을 버텨냈다. 이제는 그런 여행을 못 해낼 것 같은데, 그 당시엔 구글 지도 캡처만 가지고 길을 찾아내었다. GPS도 우리 위치를 제대로 표시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도시에서 수월하게 찾았던 길과는 달리 아씨씨는 만만치가 않았다. 길은 너무 좁았고, 고불고불했다. 길을 걸어도, 걸어도 비슷한 재료와 형태의 건물들이 이어져서 내 위치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길을 잃어버려 어느 가게에 들어가 길을 물어 물어 성 프란체스카 성당으로 향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로마에서는 9일을 보냈다. 로마라는 도시를 이미 가기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던 나와 다솔이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막연한 기대는 테르미니 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깨졌다. 로마는 매우 복잡했다. 옛 도시에 현대를 구겨 넣은 느낌. 많은 옛 유적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 위로 많은 사람들과 현대의 것들이 중첩되어 있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옛 도로 위에 자동차 도로를 엎고, 트램의 길을 다시 엎어 놓았다. 도로는 당연히 평탄하지 않았다. 캐리어를 끌고 덜컹거리며 호텔에 도착해 우리는 로마의 첫날을 그렇게 힘겹게 시작해야 했다.
로마의 1월에는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이곳의 비는 다행스럽게도 런던에서처럼 거세게 몰아치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올 때면 더 오래 성당에 머물렀다. 그 어떤 신도 믿지 않지만, 성당의 공간은 언제나 좋았다. 높은 층고에 정성스레 빚어진 석재들의 무겁고 우직한 구조가 좋았다. 몇 천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련함이 좋았다. 그래서 로마에서의 여행은 성당에서 성당으로 이어졌다. 사진 속의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부터 바티칸 시티의 Basilica di San Pietro까지.
이탈리아는 돌의 나라 이기도했다. 돌로 몇 천년 자리를 지킬 건물을 수 없이 세웠고, 돌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상을 빚었다. 예술가라면 응당 돌을 만져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의 땅에선 무른돌이 나왔다. 가공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무엇이든 일단 돌로 만들기 시작했다.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훨씬 긴 세월, 그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는 조각상 앞에서 그 당시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부터 베르니니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까지.
바티칸 시티를 방문하는 데에 우리의 하루를 몽땅 투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여겨졌다. 사실 하루 이상 가봐야 할 정도로 멋진 곳이다. 많은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시대의 가장 천재적인 건축가들이 하나, 하나 완성해 간 장소다. 좋지 아니할 수 없다.
바티칸 광장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해서 성 베드로 성당을 올랐다. 거대한 열주들은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을 그린다. 광장이 열쇠 모양으로 읽힌다. 로마는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의 배경지이기도 해서 자꾸 소설 속에 등장했던 상징들이 떠오른다. 성당을 종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건축과 픽션으로 읽어내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을 런지.
아직까지도 필름을 사용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낯선 추억이 성큼 나에게로 올 때의 설렘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DSLR로 찍고 바로 확인하는 것과 다르게 며칠을 기다려서 받아 드는 나의 사진들은 내가 찍은 것인데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처럼 반갑고, 낯설다. 특히 이렇게 몇 년이나 지나서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필름을 현상해 받아 볼 때 그 감정은 배가 된다. (물론 일부러 필름을 묵히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항상 실수였다.)
고작 30여 장의 사진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 것인데, 마치 내가 다시 로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내가 맡았던 공기와 걸었던 거리와 차갑고 쌀쌀한 바람이 볼을 스쳤던 그 순간들이 그대로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친구와 나눴던 대화와 함께 마셨던 와인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더 천천히 즐겼으면 좋았을 것을, 더 여유롭게 걷지 못하고, 쉬지 않고 했던 여행의 순간들이 아쉽고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다시 로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 것이다. 색깔 없이 돌아온 37장의 사진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