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Mar 21. 2017

봄이 온다는 것은 벚꽃이 핀다는 것

4월의 서울대공원

00 봄이 온다는 것은 벚꽃이 핀다는 것


온통 새하얗게 잎을 물들이며 개화하는 벚꽃은 언제나 봄이 되면 가장 보러 가고 싶은 꽃이었다. 당연하게 초록색이던 나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홍 빛을 띠며 하얗게 변해버릴 때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지나치던 거리도 벚꽃이 만개한 때면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벚꽃은 야속하게도 항상 중간고사랑 겹치곤 했고, 시험을 다 보고 나면 이미 대부분의 벚꽃은 바닥으로 추락한 뒤였다. 주말이 오기 전, 주중에 비라도 한 번 오면 그것으로 그 해의 벚꽃은 끝이었다. 비가 오면 떨어질까,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가장 걱정되는 꽃이다. 그래서 매년 다짐하곤 했다. 내년엔 반드시, 반드시 벚꽃 축제에 가리라.


2014년은 휴학을 하던 해였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된 것은 초등학교를 들어갔던 1996년 이후로 처음이라, 다음엔 쉽게 기회가 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진해군항제를 보러 떠나기로 했다. 서울에서 진해까지, 먼 길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 해의 벚꽃은 유난히 빠른 속도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4월 둘쨋주로 방문 일정을 세워놨는데, 4월에 들어서자마자 거리에 속속 벚꽃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진해는 서울보다 벚꽃이 빨리 개화할 테니, 4월 8일 즈음 진해로 떠나기 전까지 이미 나는 벚꽃이 다 지고 말았으리라 절망했다. 다행히 내가 방문했던 주에 진해에서는 벚꽃이 만개까지는 아니어도 전멸하지는 않았던 터라 그럭저럭 만족하며 새싹이 나고 있는 벚꽃으로 위안했다.



꼭 진해군항제가 아니더라도, 서울에서도 벚꽃 축제를 연다. 여의도에서도 열리고, 집과 가까운 석촌호수에서도 벚꽃 축제는 열린다. 물론 그 두 곳 모두 방문해보았다. 하지만 벚꽃을 즐기기에 앞서,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석촌호수는 특히 여의도보다 그 크기가 작으니, 호수 주변 트랙으로 빼곡히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한 방향으로 걷는다. 그 모습이 마치 아주 아름다운 꽃나무 아래의 좀비를 연상케 했다.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경으로 검은색 머리들이 무수하게 보였으니까.





01 서울대공원, 과천


그런데 작년, 의도치 않게 아주 좋은 벚꽃놀이 장소를 알게 됐다. 과천 서울대공원이었다. 서울에 있는 벚꽃들은 꽤 많이 잎이 떨어져서, '올해도 실패구나'하던 때에 믿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방문한 서울대공원에서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아직 떨어지기 전,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서울대공원은 서울과 가까워 언제라도 계획 없이도 훌쩍 떠날 수 있고, 서울의 어느 공원보다 넓어서 웬만하면 사람에 치이면서 돌아다닐 일이 드물다. 넓기 때문에 사진도 찍기 훨씬 편했다. 이런 곳이 여의도보다, 석촌호수보다 유명하지 않다니. 올해는 모두 방문해보시라고 작년의 벚꽃 사진을 공개한다. 날이 흐려도 좋았다.





02 벚꽃놀이


생각해보니 '벚꽃놀이'라는 단어는 벚꽃을 위해 특별히 존재한다. 꽃놀이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쓰지만, 특정 꽃 이름을 앞에 붙이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매화 놀이, 개나리 놀이, 코스모스 놀이, 유채 꽃놀이 등은 모두 쓰지 않는 말이다.



벚꽃을 보러 가는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벚꽃을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러 간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함께. 그래서 벚꽃은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이유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벚꽃은 특별하다. 혹자는 일본의 꽃이라며 싫어할지라도, 나는 좋다. 한순간이라도 이 세상을 딴 세상처럼 만들어주는 꽃은 역시 벚꽃이 제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축복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