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축적된 경험은 설계자로서의 자양분이 된다.
신년 회식이 있었다.
선임들이 모인 자리였다.
예년과 달리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웃음은 있었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고,
잔을 기울이는 손끝에는 묘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지난 4-5년 동안
매니저들은 거의 쉼 없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왔다.
휴가는 미뤄졌고, 개인의 여유는 늘 나중이었다.
조직을 지키기 위해,
일반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benefit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기울었고,
매니저들은 말없이 그 구조를 받아들였다.
그 인내는 성숙했고,
그래서 더 오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곪으면 결국 밖으로 스며 나온다.
거기에 최근 '당장 자기 능력이 대체되기 어렵다는 것'에 착안한
일부 직원들의 무리한 요구와 언행은
그들에게 자괴감을 더하는 거 같았다.
냉정하게 보면 시간과 노력이 조금 더 투여되겠지만,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그 공백을 감당하는 것이 힘든 매니저들의 고통에 공감해
그 요구가 잠시 받아들여질 뿐
오래가지 못한다.
한때 우리는 스타플레이어를 믿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한 사람,
혼자서 성과를 끌어올리는 재능.
그 믿음은 오랫동안 유효해 보였다.
그리고 AI 시대가 오자,
우리는 비슷한 기대를 다시 품었다.
“성능 좋은 모델 하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늘 기대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AI Foundation Model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가 보인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LLM이라도
혼자서는 실제 이행까지 요구되는 정도의 일은 할 수가 없다.
기억 계층이 없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행동 장치가 없으면 말만 남고,
조율 기능이 없으면 흐름은 끊기며,
통제 장치가 없으면 작은 오류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AI는 결국 팀(Agentic AI, Foundation Model)이 된다.
생각하는 역할이 있고,
기억하는 역할이 있고,
실행하는 역할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을 묶는 조율자가 있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아주 익숙한 진실과 마주한다.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도
혼자서는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
AI의 세계에서 성능 격차는 빠르게 사라진다.
오늘 최고였던 모델은
몇 달 뒤엔 표준이 되고,
곧 비슷한 대안이 등장한다.
‘누가 더 똑똑한가’의 싸움은
결국 미세한 차이로 수렴한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눈부셨던 개인의 역량은
시간이 지나면 평균이 된다.
학습이 누적되면, 격차는 줄어든다.
그때 남는 것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혼자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함께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없으면 이 팀은 돌아갈까.”
“내가 빠지면 모든 게 무너질까.”
하지만 진짜 강한 조직은
누군가 빠져도 돌아간다.
그리고 그런 조직을 만든 사람은
자신이 없어도 팀을 굴러가게 만드는 선임이다.
시스템적으로 팀이 굴러가게 설계하는 것이 팀장의 역할 중 하나인 셈이다.
AI도 그렇다.
좋은 시스템일수록
특정 에이전트에 의존하지 않는다.
흐름이 있고, 대체가 가능하며,
문제가 생겨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람의 팀워크도 마찬가지다.
팀워크란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잘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팀장의 역할은 고되다.
직접 성과를 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대신 방향을 잡고,
갈등을 조정하고,
실패를 감당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줄고,
보이지 않는 책임은 늘어난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나며
사람은 조금씩 바뀐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서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으로.
AI 세계에서는 이 역할을
'워크플로우 오케스트레이터'라 부른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팀장이다.
팀장은 가장 뛰어난 실행자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지금 순서는 맞는가.
누가 가장 잘할 수 있는가.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은 조용히 설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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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자리에서 마주한 그 얼굴들.
지쳐 있었고, 억울해 보였고, 여러 고민으로 흔들리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쌓아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개인의 성과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지만,
구조와 팀은 남는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든 사람은
조직이 바뀌어도 계속 필요하다.
AI 시대는 스타플레이어의 시대가 아니다.
설계자와 조율자의 시대다.
아무리 뛰어난 존재도
혼자서는 완결되지 않는다.
사람도, AI도,
결국은 팀으로 완성된다.
오늘도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팀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팀장과 선임들에게,
당신의 역할은 충분히 값지다고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by 제제
- 팀 자체로 잘 운용되는 구조 설계를 고민하는
-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팀 전체의 성장을 고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