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람이 나를 오인한 거 같고, 그 오인을 그대로 두자니 사기 치는 느낌이라 마음이 불편하고,
- 또, 그 사람의 기대치에 부합 못할까 두렵기도 하고,
- 기대치에 부합하기 위해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 가식을 범하게 될까..
등등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 차 나는 다소 격한 표현을 하면서 과도하게 거부했던 거 같다.
물론 상대는 예의상 한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지충'인 나는 늘 마음속에 많은 질문으로 편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다. 그리고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을 덧붙여 본다.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노력하지만, 준수해야 할 '원칙'이 있기에 의도치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저로 인해 상처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나도 누군가에게는 개놈일 수 있다'란 생각을 하고 나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란 말을 삼갑니다."
좋은 사람?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가를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그 사람이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노력하고 있는지'에 있다고 본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고 해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하듯이,'선(Good will)'을 바라보며 노력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사람을 해치지 않고 타인에게 기여하려는 방향으로 더 깊게 생각하고 나아갈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과정 중에 본래의 나, 인간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질 때도 있지만, 결국 바라보는 방향이 Good will이기에 넘어지고 무너져도 결국 일어서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더 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만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과 타인에게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많은 분들이었고, 그를 위해 작게 크게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사람'을 지향해 오던 분들이 리더가 되면서 난감해지는 상황을 심심찮게 본다.
특히, '좋은 사람'으로 정평이 난 분들일수록 직급이 올라가면서 자기에 대한 평가와 자기가 바라보는 '선한 리더십'이란 방향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다.
공감력이 강한 '좋은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으로 정평이 난 분들은 사람에 대한 '공감'이 탁월했던 분들로, 주니어 시절에 peer group에게 인기가 많았던 분들이다. 그러나 조직을 이끌다 보면 가끔은 팀원에게 매우 불편한 진실을 전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분들 중에는 그간 쌓아온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까 봐 그 상황을 매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심한 나도 선임이 되면서 당연히 그런 상황을 마주했고, 공감하고 보호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 나머지 나도 지치고, 팀원도 성장하지 못했던 경험이 허다하다. 불편한 상황을 피해왔기에 내 직속 후배들은 사회생활의 common rule을 종종 어겨 '개념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후배들을 spoil 시키는(무개념화시키는) 선임으로 찍힌 적도 있다 (선을 가지고 행동했지만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만 한 것에 대한 결과는 누구에게도 좋지 못했다)
리더의 공감능력은 팀의 성과, 조직 문화, 그리고 팀원들 사이의 신뢰와 협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사람을 움직여야 하기에 그 사람이 왜 주저하는지, 왜 힘들어하는지 알려면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포함한 맥락을 알아야 한다. 그 맥락 속에서 팀원이 느끼는 좌절, 두려움, 기쁨,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을 깊게 공감한다면 매우 '효과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리더의 '공감'은 '절대적 이해와 수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직에 합류하기로 약속한 순간, 그 조직의 rule과 목표에 부합하겠다고 암묵적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후배가 그 기본적 규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거나 실수를 했을 경우, 그 후배가 처한 맥락과 입장은 공감하지만, 어떤 부분은 조직과 팀 등을 포함한 대의에 우선순위를 두고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때 용납이 안 되는 이유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팀원이 더 큰 맥락을 볼 수 있도록 돕고, 그 사람의 언어로 납득 가능하도록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과 사람에 대한 commitment가 중요하다.
상대가 더 큰 맥락을 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납득 가능하도록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입장이 다른데 어떻게 단 몇 시간에 몇 마디 말로 이해를 시키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당연히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간을 들였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는데도 저러다니... 제는 안 되는 사람이다'라며, 그 팀원의 한계를 쉽게 단언하며, 그 사람을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들일 수 있고, 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성장에 대한 commitment(헌약)'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Commitment란 '헌신을 기반으로 한 약속'이라고 해석될 수 있을 거 같다. '과정 상에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내가 처음 약속한 것을 이루기 위해 멈추지 않고, 노력을 이어나가겠다는 약속'이 내가 생각하는 commitment의 정의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새로 후배가 들어오면, 조직의 선임으로 입사 첫날, '상호성장에 대한 commitment'의 의미를 설명하고, 약속을 받아왔다. 이때 약속받은 commitment에 내포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 '함께 일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서로 노력할 것'
- '얕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만'을 참기보다 불편한 상황을 함께 직면해 해결책을 만들 것'
- '불편한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상대의 맥락과 입장, 성향을 먼저 고려하여 가장 효과적인 설득 방법을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쓸 것'
'상호성장에 대한 commitment'를 위해 매일 마음을 수련하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늘 자신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과정과정 나는 얼마나 미숙했던가!
그 미숙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왜 없겠는가!
commitment를 하고 지켜 나가는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 묵은 된장'처럼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한다면 정말 깊게 공감하고 배려하는 팀웤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