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내게 꼭 맞는' 선택?
'아름답다'라는 단어는 '아름'이라는 명사와 '답다'라는 접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은 옛말에 '나'를 뜻하는 말로, '아름답다'는 곧 '나답다'로 해석된다.
'나답다'란 무슨 말인가? '나답다'는 단순히 내 취향이나 내가 원하는 모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다. 직업, 관계, 삶의 방향 역시 나답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파랑새를 쫓는 현대의 유목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바로 '내게 꼭 맞는 선택'일 것이다.
주니어 시절 나는 너무 많은 직업을 탐색했었던 거 같다. 선배들이 내 기대와 달랐고, 장기적 시각으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안정'을 제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직업도 직장도 비교적 많이 변경했던 거 같다. 그 중에는 내 성장을 위한 계획된 선택도 있었지만, 내 또래와 비교로, 또는 조직에 대한 불만으로 성급한 이직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상만 보고 원하는 조직과 원하는 업무를 맡았으나, 나 자신을 모르고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선택해서 나를 꾸겨 넣다가 결국 탈이 났다. 장기 칩거를 하게될 정도로 피폐해졌던 기억이 있다.
직장인 중에 내내 만족하고, 신명나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좋은 회사, 좋은 복지가 주어져도 인간은 내게 주어진 것 외의 부재한 것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다.
'동료가 맘에 안든다', '늘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 있을거다'란 믿음으로 주어진 자리를 박차고 떠나보지만, 정작 새로운 직장에서 또다른 불만에 부딪히곤 한다.
"이직 고민을 하고 있어요!"
오랜 만에 만난 L 과장도 그랬다. L과장은 옮긴 지 1년도 안 돼 다시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제가 생각한 것과 상황이 많이 달라요! 존경할 수 있는 상사도 없고, 존중하는 문화도 없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회사의 비전을 찾기 어렵죠."
L과장이 옮긴 회사는 직전 근무지보다 대외적으로는 이름도 높은 회사였고, 매출 등 실적도 좋은 회사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가장 가깝게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는(?) 지인이 우리나라 3대 대기업 중 2곳을 다닌 적이 있는데, 그 지인도 아주 혈기 왕성했을 때, 조직에 비전이 안보인다고 박차고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내 대답은, '우리나라 대기업에도 비전이 없다면, 조직에는 원래 개인이 기대하는 이상적 '비전'따위란 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당신이 회사의 비전을 보지 못할 만큼 얕은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닐까?,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비전을 못 세우는 것일 것 같은데....' 였다.
시간이 더 지나서 그는 '더 큰 맥락에서 봤으면 이해가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인줄 알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던 시기였던 거 같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정말 그 조직만의 고유 문제거나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가 아니고, 조직의 보편적인 문제라면, 이직을 결정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지금 자리에서 얻고 있었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L과장에게 현재 조직이 비전과 존중의 문화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40대를 바라보다 보니, 연봉과 브랜드가 다가 아니더라구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업무를 기한 내 완성해도 도무지 감사가 없어요. 또, 협업을 요청할 때도 배려도 없구요. 사람에 대한 인정도 없고 경쟁적 문화여서 사람들의 재직기간이 길지 않아요. 오래 있을 조직은 아니죠."
L과장은 이전 조직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다. 이전 조직에서는 L과장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L과장이 시간을 많이 투여해서 결과를 낸 것에 대한 기본적 감사가 표해졌고, L과장의 업무에 포함된 희소성만으로도 조직의 인정을 받기 용이했다. 그러나 현 조직은 L과장의 업무가 조직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대체자도 많은 곳이다. 월등한 경쟁력을 보이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로 보여졌다.
이직하기 전에 구체적인 현황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절머리 쳐지는 직장과 동료들 대신에 월급이나 대외 평판도, 안정성, 교육기회 등 다른 보상은 정말 없는지, 힘든 협업 과정에서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방법이 있는지, 어쩜 그런 환경이기에 당신이 그 조직에서 더 인정받고 보상받진 않았는지 명확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L과장이 이직을 후회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L과장의 대답으로 미뤄보아 본질적인 불만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인정이 부재'한 것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였다. 이전 회사에서는 조직의 안정성과 연봉, 그리고 자기 일에 대한 조직 이해력 부족이 고민이었던 L과장이었다. 그러나, 사실 L과장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존재가치' 또는 '자기효능감'이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우리는 늘 눈앞의 행복을 놓친 채 더 멀리만 바라본다.
L과장이나 나 처럼, '자기에게 꼭 맞는 곳'에 있었지만, 인지를 못하고 타인과의 비교로 '더 나은 곳'을 찾아 헤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있다. 사람마다 중요시 여기는 요소가 다르다. 중요한 선택을 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결국, 우리가 찾고 선택해야 할 것은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나를 나 답게 만드는, 내게 꼭 맞는 것'이 아닐까싶다.
나를 깊게 탐구하고 나다운 선택을 이어가고픈
by 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