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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의 종말, 존재의 시작”

- 인간 본질에 기반한 일(work)은 계속된다.

by 단호한 제제

최근 [The Era of Experience]라는 논문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 번 AI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절감했다. 이 논문은 데이비드 실버(David Silver)리처드 서튼(Richard Sutton)이라는 두 명의 AI 선구자가 공동 집필했다.


David Silver는 세계적인 AI 연구 기업 DeepMind의 수석 과학자로, AlphaGo, AlphaZero, MuZero 같은 전설적인 AI 시스템을 만든 중심 인물로 알려졌다. 바둑에서 인간 최고수를 이긴 AlphaGo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지식을 발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Richard Sutton은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Reinforcement Learning: An Introduction]이라는 기본서를 쓴 교수이자 연구자다.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와 DeepMind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지능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는 철학을 평생에 걸쳐 주장해온 이 분야의 그루(Guru)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이 쓴 [The Era of Experience]는 단순한 기술 논문이 아니다. 그들은 논문을 통해 그들의 통찰력을 아래와 같이 전했다.


“이제 AI는 인간이 남긴 데이터를 학습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며 배우는 존재가 된다.”


이 말은 단순히 AI의 기능적 성능이 좋아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AI가 스스로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의 라벨링 없이도 AI 스스로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의 전략을 학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이 만든 자료만 흉내 내던 AI에서 벗어나, AI가 스스로 시험하고 실험하며 배우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마치 인간처럼.


이는 인간 중심의 AI에서, 환경 속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자율형 AI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이 담긴 이 선언적인 논문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근본부터 재구성될 것을 조망한다.


AI가 더 이상 인간이 생산한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경험하며 자율적으로 발전한다면, 대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만약 AI가 반복적 노동을 넘어, 인간과는 다른 경로로 새로운 경험을 쌓고 배워 나간다면, 우리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직업’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AI와 사회 변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저명한 저자들에게 답을 구해보았다.


한 분은 [Employement is Dead: How Disruptive Technologies are Revolutionizing the Way We Work]란 저서를 통해, 최신 기술과 조직 이론을 바탕으로 고용 구조의 붕괴를 조망했고, 다른 한 분은 20년 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책을 통해 인간 본질로부터 출발한 고용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고용은 죽었다 - 시스템을 떠나는 노동


[Employment is Dead How Disruptive Technologies are Revolutionizing the Way We Work ]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출판부에서 2025년에 출간된 책이다. 공동 저자인 Josh Drean은 Web3 기반 미래 직장 전략을 연구하는 Work3 Institute의 공동 창립자이며, Deborah Perry Piscione는 실리콘밸리 혁신 생태계를 분석해온 전략가이자 기술 저술가다.


그의 저서에서 그들은 말한다.

“고용(employment)은 죽었고, 이제 우리는 작업(work)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AI,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DAO, 메타버스 같은 신기술은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이 기술들은 기존의 고용 시스템을 해체하고, 노동자와 조직 사이의 관계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Work3 모델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직장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다. 각자는 분산된 조직의 기여자(contributor)로서 자신이 한 일을 블록체인에 남기고, 스마트 계약으로 보상을 받는다. 중간 관리자 없이 일과 결과가 연결되고, 노동의 가시성과 공정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앞으로 기업과 개인이 이 흐름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실행 전략으로 제시한다.



이제, 스스로를 고용하라 – 인간의 본질로부터 출발


Josh Drean과 Deborah Piscione가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를 설계했다면, 변화관리 전문가로서 미래를 조망하는 통찰력이 뛰어났던 구본형 선생은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출발했다.


그는 2000년대 초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라는 책을 통해, 이미 직장의 종말을 예견했다. 구본형 선생은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직장은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바탕으로 일해야 한다.”


구본형 선생은 LG그룹에서 오랜 시간 변화관리와 인재개발을 연구했던 전문가이자, 퇴사 후에도 변화경영연구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혜안을 나눠주셨던 분이다.


그가 말한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메시지는,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기반하여 일을 시작하는 삶을 뜻한다. 그는 기술이 아닌 '자기 발견'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선생의 말은 단순한 자기계발 조언이 아니라, AI와 탈중앙화 조직 시대에 가장 근본적인 전략으로 조명되어야 하는 본질에 가깝지 않나 싶다.



서로 다른 관점, 그러나 일맥상통한 방향성


이 두 책은 시대도, 언어도, 방법도 다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공통된 통찰이 있다.


인간은 더 이상 고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 스스로 일을 정의하고, 관계를 설정하고, 보상을 설계해야 한다.

기술은 단순히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질로의 더 깊은 탐구를 이끄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서 [The Era of Experience]에서 말한 것처럼, AI는 이제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탐색하고 판단하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자율성이 강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기존 시스템이 제공해주던 안정된 고용 구조가 해체될 때, 우리는 더 근원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고용하고, 연결하고, 성장해야 한다.



고용의 끝, 자기 주도의 시작


결국, AI의 발전이 불러오는 ‘전통 조직 시스템의 붕괴’와 ‘고용은 죽었다’라는 말은 인류의 끝을 나타내는 절망을 내포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태생부터 인간의 본질이었던 자기 주도적 삶으로 전환을 촉구하는 선언일 수도 있다.


"기술은 스스로를 진화시켜가고 있다.

이제,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by 제제

강한 자율성에 기반해 스스로를 고용하고,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고 함께 성장해가길 원하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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